혼자의 쾌락, 그리고 놓치고 있는 것들

  • 등록 2025.10.13 10:5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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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태 서주태비뇨의학과의원 대표원장(연세대 의대 졸업·전 대한생식의학회 회장·전 제일병원 병원장)

 

용인신문 | 남성불임을 전문으로 하는 비뇨기과 진료실에는 최근 들어서 예상치 못한 환자들이 찾아온다. 물론 무정자증이나 정계정맥류처럼 뚜렷한 난임의 원인을 가진 남성들이 많이 오고 있지만, 요즘에는 발기도 잘 되고 사정(射精)도 문제 없는데 정작 아내와의 관계가 원활하지 않아 난임으로 이어지는 남성이 늘고 있다. 필자에게 와서 “정자를 고환에서 꺼내서 IVF(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겠다”는 말하는 남성을 마주할 때마다 의사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왜 그들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하지 않으려고 할까. 단순히 생식기관의 기계적 고장이 아니라, 상당수가 혼자의 쾌락에 과도하게 길든 습관으로 인해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기피하거나 잘 안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제는 결혼이 삶에서 당연한 수순이 아니다. 싱글로 살아가는 남성이 증가하고, 연애조차 큰 부담으로 여기는 사회에서 섹스리스는 더 이상 특이한 현상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욕망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대부분 자위다. 처음에는 단순한 해소 수단으로 시작한다. 긴장을 풀고 스트레스를 줄이며 자기 신체를 확인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빈도가 잦아지고 습관화되면 어느새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만다.

 

자위 자체가 해로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과유불급’이다. 뇌는 반복된 자극에 지나치게 잘 적응한다. 도파민이 분비될 때마다 뇌의 보상 회로는 강화되지만, 과도하게 자극받으면 내성이 생긴다. 처음에는 작은 자극에도 만족하던 뇌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파트너와는 잘 안 되고, 오히려 화면 속 영상 앞에서는 과도하게 반응하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과다한 자위를 지양해야 하는 이유는 의학적으로도 분명하다.

 

첫째, 발기 문제다. 지나치게 강한 손의 압력에 익숙해지면 실제 파트너의 자극으로는 발기가 충분히 유지되지 않는다. 진료실에서 “혼자 할 때는 멀쩡한데, 아내 앞에서는 힘이 없다”는 말은 결코 드물지 않다.

 

둘째, 조루·지연사정이다. 습관적으로 급히 끝내는 자위는 조루를 고착시키고, 반대로 영상과 손이라는 특정 조건에서만 사정하는 습관은 지연사정을 유발한다. 이는 단순히 성기능 문제를 넘어 부부관계의 질을 떨어뜨리고, 임신을 시도하는 과정에도 직접적인 어려움을 준다. 여기에 심리적 위축이 겹치면 부부관계를 피하게 되고, 섹스리스라는 악순환에 빠진다.

 

셋째, 정자의 질(수와 활동성)이 떨어진다. 잦은 자위로 인해 실제 부부관계 시 배출되는 정자의 수는 줄어들게 된다. 자연임신에 성공하려면 정자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야 한다. 3억 마리의 정자가 사정되어도 난자가 기다리는 나팔관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정자는 고작 100마리 남짓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조선시대 양반가에서는 임신을 앞두고 100일간 금욕을 지켰다. 단순히 유교적 도덕 때문만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정원세포가 성숙한 정자로 변화하는 데는 약 64~72일이 걸린다는 것을 선조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기생집 출입은 물론, 수음조차 금지했다. 건강한 정자를 배출해 건강한 자손을 얻기 위한 실천이었다. 건강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전략이었고, 동시에 사랑을 절정에서 만나게 하는 비밀이었다. 오늘날 의학 지식으로 보더라도, 절제와 조절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자기 관리의 방법이다.

 

인간의 뇌는 감정적 교류와 성적 교류에서 같은 회로를 사용한다. 혼자의 쾌락에 익숙해진 뇌는 실제 인간관계에서 오는 미묘한 감각과 정서를 불편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싱글남성이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불안은 커지고 자신감은 줄어든다. 결국 섹스리스는 ‘선택’이라기보다 오랜 습관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결혼을 미루는 사회적 풍조, 연애를 ‘비용 대비 효용’으로 따지는 현실, 포르노가 너무 쉽게 소비되는 환경이 합쳐져 남성의 성적 습관을 왜곡시키고 있다. 많은 남성이 스스로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지만, 막상 관계에서 자신감이 떨어지면 더 깊은 자기 위축과 회피로 이어진다.

 

적어도 건강한 임신을 원하는 남성이라면, 지금이라도 절제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순간의 쾌락에 빠져 정작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면, 작은 습관부터 바로잡는 것이 최선이다.

용인신문 기자 news@yongi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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