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酒) 일곱가지 맛,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

  • 등록 2006.11.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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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 혼을 만나다 / 고양 쌀 막걸리

   
 
가난한 서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애환을 달래주던 구수한 막걸리. 아버지 심부름으로 주전자에 막걸리 받으러 가던 기억이 40대 이상의 연령층에는 아련한 고향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막걸리 가운데서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막걸리가 있다.

세칭‘박정희 막걸리’라고 불리는 ‘고양 쌀 막걸리’. 5대째 이어지는 경기도 고양시 배다리 술도가의 막걸리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즐겨마시던 술로 유명하다. 박 대통령이 1966년부터 즐겨 마시기 시작해 1979년 시해 때까지 14년간을 대통령주의 자리를 지켰으니 그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배다리 술도가는 혼신의 열정을 담았을 것이다.

박대통령주는 그 후에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박 대통령이 마신 막걸리를 마셔 보고 싶다”며 고양막걸리를 주문한 것을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공개적으로 전달해 유명세를 탄 것이다.

그 후 2005년 4대 잇는 박관원 (배다리 주 박물관) 관장이 경기으뜸이로 선정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으뜸이 박 관장은 배다리 술도가의 산 증인.

박 관장은 1915년 배다리 술도가 ‘인근상회’를 창업했던 박승언 옹의 4대손으로, 능곡양조장을 계승 받았다가 72년부터 능곡 등 5개 지역 양조장이 ‘고양탁주 합동제조장’으로 통합된 후 대표이사로 일해 온, 우리 술의 살아있는 역사라 할 수 있다.

‘고양 쌀 막걸리’는 여느 막걸리와 같은 살균주가 아니라 보존기간이 5일에 불과한 생주로 쓴 맛, 단 맛, 시원한 맛, 신 맛 등 일곱 가지 맛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이러한 맛의 비결은 거의 100년 전인 1915년 배다리 술도가의 근원인 인근상회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안타깝게도 이 술에 대한 비방을 적은 책자는 가보로 전해오다가 한국 전쟁 때 능곡양조장과 함께 소실되었다 .
다만 그 비법 몇 가지는 정확하게 전수되었는데 이를 받은 이가 바로 박관원 현 배다리 박물관 관장이다.

배다리 술도가 ‘인근상회’를 창업했던 박승언 옹은 보기, 보혈, 보양에 도움이 되는 약주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배다리 술도가가 탄생하자마자 인근의 술꾼들을 사로잡았다고 전한다.

혀에 감칠맛이 나며, 술기운이 오르고 내리는 속도가 완만해 기분이 좋고, 뒷머리를 때리는 후유증이 전혀 없어 이 술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은 1966년부터 시작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한양골프장에 갔다가 오는 길에 김현옥 서울시장과 함께 삼송리 실비집에 들렀다.

말을 타고 와서 손 씻는 물을 달라고 하자 주인은 직접 갖다 씻으라고 툴툴거렸다. 같이 온 서울 시장이 대통령이 오셨다고 했지만 주인은 대통령이 이런 곳에 왜 오느냐며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자신의 가게를 찾은 게 정말 대통령인 것을 알고 그제야 안주거리를 바삐 준비하며 막걸리를 내놓았다.
이날 대통령은 술맛이 좋다며 어디 술이냐고 물었는데 이것이 바로 고양 쌀 막걸리와의 인연이다.

그 후 고양탁주합동제조장이 청와대 납품양조장이 돼 이후 청와대 직원은 직접 양조장을 드나들며 매주 막걸리를 두말씩 가져갔다. 회식이나 만찬이 있을 때는 열 말 정도를 가져갔다고 전한다.

양조장에서는 청와대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술을 빚어 그것을 밤새 지키며 정성을 다했고 청와대 납품 막걸리만큼은 특별히 쌀과 찹쌀로 빚었다.

박 대통령이 시해되던 날도 막걸리를 가져갔지만 마시지는 못했다고 전한다.
박 관장은 14년 동안 청와대 납품 양조장을 운영하면서도 정작 박 대통령을 대면한 적은 없다. 즉 청와대에 들어가는 술이라고 해서 특별한 혜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보기관에서 수시로 찾아오고 또 막걸리 보관실 열쇠도 관할 경찰서에서 관리하는 등 관리만 엄격했다. 그런가하면 대통령이 마실 술을 만드는 것이라 하여 위생복을 입어야 했는데 의사 가운을 구해서 잘라 입고 일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온다.

그러나 대통령이 마시는 술을 만든다는 자부심은 그 어떠한 대가보다도 컸다.
박 대통령 서거 이후 고양막걸리는 더 이상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우연처럼 때를 같이해 전반적인 막걸리 시장은 사양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요사이 젊은층 사이에서 서서히 막걸리 붐이 일기 시작하고 있다. 젊은 감각을 가미한 막걸리 카페 등이 문을 열면서 옛날 변도(도시락)와 함께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하고 있다.

과연 막걸리의 전성시대를 다시 맞을 수 있을까. 좀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세계 각국에서 자국의 유명주로 전 세계 주류 시장을 휩쓸고 관광 수입마저 올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때다. 우리의 전통주인 막걸리로 세계 주류 시장을 점령하고 관광 상품과 접목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

5대의 맥을 이어가는 박상빈 대표(배다리 주 박물관 내 전통술연구소)의 어깨에는 이 같은 과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주교주를 개발하는 등 젊은 주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는 박상빈 대표는 전통의 맥을 이어나가는 주자로서 책임을 완수할 수 있을 것 같다.

▷ 배다리 주(酒) 박물관
배다리 박물관(관장 박관원·고양시 덕양구 성사 1동)은 고양 막걸리의 근원지인 주교동의 옛 이름을 따서 지어진 전통주 박물관이다.

박물관은 홍대 건축학과 출신인 박상빈씨가 직접 설계하고 시공해서 만든 것으로 1200평 부지에 연건평 220평으로 지상 2층 규모를 갖고 있다.

이곳 박물관에는 박 관장이 평생 소장하고 수집한 술 제작 도구와 술병 소품 유물 등이 전시되고 있다. 근 100년을 이어오는 배다리 술도가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2층에 마련된 제 1전시장에는 조선 중기에 탁주, 약주(청주), 소주를 빚을 때 사용된 누룩틀, 소주고리, 종국상자, 술시루, 쳇다리, 약주틀 등의 도구와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술 저장용으로 쓰였던 각종 술독, 술통 등을 전시하여 양조기술의 발달상을 보여주고 있다.

제 2 전시장에는 조선말기에 술빚는 과정을 미니어처로 제작, 술 재료 준비 과정부터 누룩 딛기, 밑술 만들기, 술 담그기 등의 과정을 구체적인 인물 묘사와 동작으로 재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오는 술 도가를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해 변천사를 보여주고 있으며 고박정희 대통령이 막걸리를 마시던 삼송리 주막집도 재현해 놓았다. 이와 함께 야외 전시장에서는 매주 일요일 전통방식으로 빚는 소주 내리기를 재현하고 있다.

박 관장은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하며 고달픈 삶에 활력을 불어넣은 우리 전통주의 역사를 발굴 정리해 기록으로 남기고, 이와 관련된 각종 기구와 도구를 수집해 그 제조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는 박물관을 만들어 전통주의 모습을 후세에 알리고 싶었다”며 배다리 박물관을 통해 우리 전통주가 다시 번영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박숙현 기자 europa@yongi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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