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지갑 속엔
플라스틱 카드 십여 장이
여윈 몸을 눕히고,
경전처럼 엄숙하다
아버지는
허기진 지폐처럼 돌아와 눕곤 했다
내 스무 살 노동을 지불하고
빨간 내복 대신 샀던
낡은 지갑에서는 세월이 빠져나가고
손자 녀석 빼닮은 근엄한 주민증 뒤편엔
흑백 사진 누렇게 들뜬
까까머리 젊은 총각의 <징집면제증서>
눌린 꽃잎처럼, 향기롭다
팔자 고칠 고액권 수표,
그래 이것이 바로 빚 보증서로구나
당신이 이 땅에 빚진 마음
땅속 깊이 씨앗 하나 고이고이 간직 하셨던 거다
스무 살 내 아버지의 <징집면제증서>
글:김종경 | 본지 편집주간·용인문학회 회장 E-mail:iyongin@nate.com
그림:윤명화 화백 | 현 명화갤러리대표 | Email:myongart@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