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 바람이 불고
산사(山寺)는 동안거에 들었는지 조용하다.
갓 산문(山門)에 들었을까
바깥 세상에 두고 온 이름을 떠올리는지
젊은 스님 걸어온 길을 접으며
속세에서부터 동행했을 흰 눈을 털고 있다.
모든 것을 털어 낸 나무들, 몸속에
질긴 몇 겹의 적막을 심고 있다.
이제 말들이 빠져나간 몸은 적멸에 든다.
얼마나 더 깊이 가라앉아야 침전에 이를 수 있을까
무형의 몸만 더듬다 풀어버리는 어깨 위로
딱! 얹혔던 졸음이 가늠조차 어려운 저 아래로 떨어지고
관절은 누구도 믿지 않을
사리 같은 응고의 말씀을 키우고 있다.
세상의 기별은 은둔의 주소지를 잘도 찾아든다.
그저, 몇 통의 번뇌를 던져놓고 절 아래로 사라지면
기억의 밖으로 눈을 쓸며 길을 열어 가는 저 마음
돌아보면 쓸려나간 자리마다
잔설이 또 그만큼 화두같이 덮이고 있다.
그새 눈은 깊어져 함부로 찍어놓은 어리석음 걷으며
산을 내려오는 길
길 잃은 몇이 바랑을 싸는지 말씀의 끝자락이
보일 듯 말 듯 눈에 덥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