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9월의 독립운동가 청산리 대첩의 숨은 영웅 ‘나중소’ 선생 선정 및 전시회 개최

  • 등록 2016.08.31 09:2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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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나중소 선생을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고 밝혔다.

나중소는 1867년 4월 13일 경기도 고양군에서 출생하였다. 1882년 16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고, 대한제국 무관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함북시찰관과 진위대 부위(副尉)로 활동하였다.

1917년 51세의 나이에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1919년 대한정의단의 교관으로 초빙되어 독립군 양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대한정의단이 대한군정서로 확대 개편되자 대한군정서의 참모부장으로 김좌진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0년 2월 초 북간도 왕청현에 대한군정서 사관연성소를 설립하고, 애국심이 투철한 청년 300명을 선발하여 교육하였다. 1920년 9월 9일에 제1회 사관연성소 졸업식이 거행되었다. 졸업생 298명 중 80명은 소위로 임명·배치되었고, 나머지 200여 명을 중심으로 교성대(敎成隊)가 조직되었다. 교성대는 대한군정서의 최정예부대로 청산리전투 당시 백운평전투와 천수평전투에서 일본군을 섬멸하였다. 교성대의 대장이 바로 나중소였다.

청산리대첩 후 독립군들의 무장투쟁의 역량을 결집하기 위한 통합운동을 주도하였다. 1921년 4월 12일 러시아에서 활동 중이던 36개의 독립군 지도자들은 ‘독립군대회’를 개최하고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였다. 이때 나중소는 이장녕과 함께 참모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하지만 대한독립군단의 계획은 1921년 6월 자유시참변으로 좌절되었다. 서일·김좌진 등과 함께 북만주를 돌아온 뒤 만주에서 활동 중이던 독립군들의 통합운동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24년 3월 대한군정서를 재조직할 수 있었다.

나중소는 1925년 1월 대한독립군단·대한독립군정서 등의 지도자들과 함께 부여족통일회의를 개최하고, 신민부를 조직하였다. 신민부의 중앙집행위원회 및 검사위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26년 3월에는 신민부 돈화변사부를 설치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이와 같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던 중 1928년 8월 18일 돈화현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활동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기념관에서는 나중소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코너를 마련하고 관련 자료를 9월 한 달 동안 전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김종경 기자 iyongin@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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