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역사적 자료 본지입수 최초 공개
1946년 11월 1일자 주화대표단원 임명장
신 지사 중국에 남아있던 동포 귀국 도와
용인출신 3대 독립운동가 집안 오광선 장군의 사위이자 여성광복군 오희영 지사의 남편 신송식 지사가 김구 주석으로부터 받은 임명장 등을 본지가 입수, 처음 공개한다.
신송식 지사는 광복 직전인 1945년 6월 1일자 김구 주석으로부터 주석변공실비서 임명장을 받았다. 또 광복후인 1946년 11월 1일자 김구로부터 주화대표단 전원위원 임명장을 받았다. 주화대표단에 임명됨에 따라 신송식 지사는 광복후 중국에 남아있던 동포들의 귀국을 돕고 1947년에야 귀국했다.
이번에 공개되는 문서 가운데는 신송식 지사가 김구 주석 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신익희 내무부장, 조완구 재무부장, 국내공작위원회 등에 보낸 자필 보고서 등 문서가 포함돼 있다.
국내에 귀국 후인 1947년, 한국광복청년회본부 중앙위원장 오광선으로부터 받은 전위총대장 임명장 등도 포함돼 있다.
또 1948년 3월 지청천장군 비서로 임명된 후 지청천(이청천) 대리로 중화민국 국방부부장에게 보고하는 문건도 포함돼 있다.
이들 문서 일체는 신송식·오희영 부부의 큰 딸 신영신(72)씨가 그동안 집에서 소중히 보관해오던 유품이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하게 됐다.
“어머니, 아버지 사진 등 각종 자료가 독립유공자 심사할 때 제대로 찾아오지 않아 대부분 유실되고 그때 제공하지 않고 남겨 두었던 서류 일부를 제가 지금까지 보관해오고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 등에 어머니 오희영 사진으로 사용되고 있는 자료 사진은 얼굴이 뚜렷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광복 후 정정산 지사를 모시고 오희영, 신송식, 오영걸(오광선 아들), 그리고 신영신씨 등 가족이 모여서 찍었던 가족 사진도 현재 유실됐지만, 다행히 1970년대에 발행된 주간여성 잡지에는 게재돼 있다.
“부모님들의 유품 하나하나가 귀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부모님 개인사적인 자료이면서 역사적 사료이고, 또 저희 자손들에게는 부모님들의 삶의 발자취이니까요.”
용인출신 3대 독립운동 집안 오희영 지사의 남편 신송식(1914~1973) 지사의 중국명은 진경성(陳敬誠)이다.
1914년 3월 4일 평남 안주군 입석면 입석리에서 출생해 일찍이 중국으로 건너가 1933년 8월 광동정치군사학교를 제4기로 졸업하고 1936년 8월 중앙육군군관학교 제4분교를 제12기로 졸업했다.
1937년 3월, 육군보병학교 간부 훈련반을 마치고 그해 4월 포병 소위로 중국군 중앙포병 제51단에 참가했으며 장사 및 영남대회전에 참가해 일본군을 격퇴하고 전과를 올렸다.
1941년 1월 임시정부의 지령으로 그때까지 복무하고 있던 중국군을 나와 임정이 있던 사천성 중경으로 가서 한국광복군 서안 전방사령부 참령 참모에 임명됐다. 그 후 징모처 제6분처의 간부, 한국광복군훈련반 교관을 지낸 신송식은 1945년 부인 오희영과 함께 임정 김구 주석 비서실에 근무하다 조국 광복을 맞았다.
해방 후인 1946년 11월 신송식은 임시정부 주화대표단 전원위원으로 임명돼 교포의 귀국 편의를 도모하는 등 중국 현지에 남아 활약하다가 1947년 6월 뒤늦게 귀국했다.
귀국 후에는 한국광복청년회를 조직해 전위대장에 피선되고, 다시 대만으로 가서 중국 국민당 정부의 국방부에서 활약하다가 1950년 2월 귀국했다.
신송식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부인 고 오희영은 1963년 대통령 표창에 이어 사후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돼 현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합장해 잠들어 있다.<용인신문 - 박숙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