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김치는 나의 인생입니다.”
우리나라 국민 김치를 책임지고 있는 대한민국식품명인 제38호 유정임 김치 명인. TV를 통해 그녀의 얼굴을 한번쯤 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김치계의 톱스타다. 김치 재연을 통해 각 가정에서 누구든지 쉽게 김치를 따라 담굴 수 있게 만든 김치 전도사이기도 하다.
이런 유정임 명인의 생일이 대한민국 김치의 날인 11월 22일과 똑같다면 우연일까. 이정도 되면 유정임 명인이 김치를 담그는 것은 필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11가지 이상의 부재료가 들어가고 22가지 이상의 영양소가 들어있는 김치를 표현하는 데 있어 11월 22일보다 더 좋은 택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해에 김치의 날을 제정할 때 유 명인의 생일과 겹치지 않도록 하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만큼 유 명인에 대한 견제와 김치 세계의 경쟁이 치열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꽃 중의 꽃 포기김치 명인 유정임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유정임의 맛있는 김치’가 우뚝 설 수 있던 것은 36년간 쌓아올린 맛과 영양으로 국민의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바탕에는 유정임 명인이 목숨처럼 지켜오고 있는 정직과 신뢰가 굳건하게 자리잡고 있다.
2010년, 대한민국 김치 명인 자리에 오른 그녀는 김치 명인 중에서도 ‘꽃 중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포기김치 명인’이다.
그보다 앞서 2002년에 MBC 김치 명인 경연대회에서 포기김치로 우승을 거머쥐면서 이미 국내외 김치 홍보대사로 활약 했으니 그녀의 손은 김치를 낳는 황금 손이다.
어린시절, 아버지가 작고하면서 반찬 가게로 생계를 유지했던 어머니를 도와 솜씨를 익혔던 것이 그녀에게 황금 손맛 비법이 전수된 경로다. 그녀의 외할머니도 솜씨가 뛰어나 그 어머니로, 유정임 명인으로 손끝의 고유한 솜씨가 전수가 됐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시댁이 종가댁이어서 전통음식 전체를 전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시어머님이 일찍 작고하는 바람에 그 뜻은 이루지 못했다. 다만 맛에 대한 생생한 기억이 그녀를 돕는다.
“시어머니가 항아리에 동치미를 담아놓으세요. 살얼음을 깨서 먹은 그 맛을 저는 지금도 못 잊어요. 항아리에 살 얼음 착, 그냥 톡 쏘는 사이다처럼 속이 뻥 뚫리고 무우는 아작아작하고 정말 맛있었죠.”
조상으로부터 전수된 솜씨에 정성까지 갖춘 그녀지만 현재는 공장에 김치연구소를 두고 품질 개선은 물론 다양한 김치 제품을 연구하면서 세계인의 입맛까지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치가 과학화, 체계화 돼 김치 맛이 한결같고 신선하다.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레시피로 정확하게 계량화 됐죠. 스마트 기계 설비도 갖춰 대량생산도 가능해요.”
그녀의 아이디어로 연구소와 함께 특허를 낸 김치가 30가지를 넘는다. 오미자 백김치, 오미자 동치미, 사골김치, 소고기 김치 등 획기적이고 반응이 좋다. 최근에 그녀가 새롭게 내놓은 단호박 백김치도 담백 시원한게 입맛을 확 사로잡는다. 이런 그녀의 김치는 홈쇼핑뿐만 아니라 신세계 본점에 입점해 있다.
# K-유정임의 깐깐한 철학
K-유정임 김치는 세계 시장에서 깐깐하고 고집이 세다.
현재 호주, 중국, 일본 등으로 김치를 수출하고 있는 그녀는 오로지 유정임 김치맛, 한국 김치 맛 그대로를 수
출한다.
“저희가 호주로 꾸준히 수출을 하는데 처음에 외국인 입맛에 맛게 해달랬어요. 저는 그렇게 안해줬어요. 우리건 우리가 지켜야 한다. 한국김치 먹고 싶으면 있는 그대로의 우리김치를 먹어라. 그렇게 해서 지금은 호주에 자리 잡았어요. 원하는대로 바꿔주면 한국김치가 아니죠. 샐러드지 어떻게 김치라고 붙여요. 그런 철학은 정확해요.”
뿐만 아니라 그녀는 해외에서 절대 김치를 싸게 팔지 않는다. 절대 우리 것을 지킨다, 버리지 않는다는 철학이 정확하다.
# 신뢰를 지키는 정직하고 당당한 CEO 유정임
TV 화면속의 유정임 명인은 항상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나온다. 고운 얼굴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김치를 재연하면서 전국의 주부들을 사로잡는다. 그 모습은 한국의 맛은 물론 한국의 미를 대표하는 홍보대사라는 느낌마저 준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요리를 배울 때 생전의 황혜성 선생은 그녀를 평양기생보다 예쁘다고 했다.
그러나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는 스스로 한 치의 어긋남도 용서치 않는 철두철미한 CEO다.
농업회사법인 풍미식품(주)의 유정임 대표이사 모습은 김치 명인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강인하고 당당한 기업가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유정임의 맛있는 김치가 탄생할 수 있었다.
지난 86년에 김치공장을 시작할 때 “누가 김치 사먹냐”며 엄마도 남편도 다 반대했다. 그렇지만 유 명인은 86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대하면서 주부들이 다 바깥으로 나가고 핵가족 시대가 될 것을 예감하며 김치를 사먹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취미가 본업이 된 거에요. 평소에 요리를 즐겁게 잘하다보니까 자신감이 있었어요. 하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엄마한테 배우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시작하게 됐죠.”
초기에는 고생도 많았다. 억척스러운 또순이, 똑순이라는 소리를 엄청 많이 들었다.
직접 등짐 지고 건물 3층까지 배달했다. 50키로짜리 김치통을 봉고차에 직접 싣기도 했다. 지금은 두 명이 같이 들 수 있는 통이지만 그때만 해도 고무통이었다.
“사람이 못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초능력이 생기는 것 같아요. 몸은 맨날 멍들어 있는거죠. 진짜 지금 생각해도 대단하다. 내가 그런 힘이 어디서 생겼는지.”
그녀는 회사의 대표이기 때문에 못할 게 없었다고 말한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여사장은 더 강해야 했어요. 왜, 생계가, 직원들 월급 줘야 하잖아요. 돈 벌어야 하잖아요.”
그런 유 명인을 보고 어머니가 많이 속상해 했다.
“지금도 친정 어머니가 너를 너무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그러시는데 어머니, 그 고생 없었으면 지금 이 자리에 못왔습니다. 저는 항상 그렇게 말씀 드려요.”
그녀는 운전면허 딴 지 단 3일 만에 트럭을 몰고 강원도에 가서 배추 싣고 왔다. 배추 값이 비싸서 산지에 가서 직접 사기 위해서였다.
“대관령 굽이굽이 지금이나 길이 좋지 옛날엔 막 고바위였어요. 내가 이 배추 안가지고 가면 김치를 못 담아. 고객과의 약속이야. 김치를 안 갖다 주면 안돼. 저는 배추 한차에 7, 8천만원 가고 그랬어도 김치를 안준적이 없어요.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 배추를 시장에 가서 팔면 돈이야 벌겠지만 사람이 신뢰가 깨져버려요. 내가 그렇게 했으면 지금의 36년을 지키지 못했어요. 나는 철저하게 신뢰를 지켰어요. 당시 김치공장이 제일 많이 생겼다가 제일 먼저 사라졌어요. 지금이야 해썹을 받아야 되지만 옛날에는 고무다라만 있으면 다 차리니까. 재료가 쌀 때 팔고 비싸면 안팔고 이런식이었죠. 그런데 그걸 지켜내려니 얼마나 어려웠겠어요. 난 손해를 감수해 가면서 했어요. 장사가 남을 때도 있고 밑질 때도 있지 어떻게 다 남아요. 바르게 한거죠. 정직하게 하다보니까 이 자리를 지킨 것 같아요 ”
# 성공신화를 이룬 유정임 명인
86년도에 수원 세류시장 한 칸에서 시작해 현재 연매출 130억(올해 목표150억)의 중견 기업으로 키운 그녀는 지금도 사다리 꿈을 꾼다.
“다락방이 사무실이야. 사무실 올라가려면 사다리를 받쳐야 해요. 전화 받고 내려와서 일하고 그러다보면 떨어지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해요. 지금도 그 꿈을 꿔요. 계단을 붙였다 뗐다.”
그녀는 지금도 영업을 직접 한다.
“제품으로 승부를 거는 거니까 제품에 충실 한거죠. 내 김치에 최선을 다해서 만드니까. 나도 먹고 내가 못 먹는건 남도 못줘요. 우리 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네가 못 먹는건 남도 못 준다. 잘 담궈라. 맞는 말이잖아요.”
그녀는 고생 끝에 2000년에 신지식인에 선정되고부터 한국농수산대학 교수와 연구 개발을 함께 하면서 억대로 매출이 오르며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유정임 김치는 100% 우리농산물로 만든다. 우리나라 농산물가격이 비싸지만 국산을 고집한다. 농민과 계약 제배를 통해서 김치를 만든다. 그게 유정임 김치의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저는 우리 몸에 우리 농산물이 좋다는 신념이에요. 우리 땅에서 자란 것을 먹어야 돼요. 우리 매출의 60%가 농가 소득과 연결이 돼 있어요. 고춧가루, 파, 마늘, 무, 배추 안들어 가는 게 어딨어요. 우리 농산물을 많이 사줘야 농민이 잘 살 것 아네요. 수입 농산물 먹으면 우리 농민들이 어떻게 살아요. 국가가 살려면 농업이 발전해야 해요. 우리 생명이 뭐에요. 먹거리잖아요. 저는 우리 농업이 죽으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녀에게 마지막 꿈이 있다. 바로 세계화를 위한 꿈이다.
“서울시청이나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에 들어와 있는 대사님들 모두 다 모셔 놓고 김치 담아서 그 나라에 보내는 게 제 꿈이에요.”
한국농수산대 위촉교수이기도 한 유정임 명인은 김치를 계승시키는 것 역시 중요한 사명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 사람은 김치를 안 담가 먹어도 담는 방법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김치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어요. 유치원, 중학교, 일반인, 외국인들 엄청 많이 와요. 요새는 코로나로 못하고 있지만 김치 계승은 나의 사명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