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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롭지 않을 나라를 위해
- 국민은 통치의 대상도, 굴복의 대상도 아니다.-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 白戰不殆).” 손자병법 최고의 유명 문장이다. “백번 이긴다는 것이 아니라 위태롭지 않다.”라는 것이다. 손자는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이 아니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라고 강조했다.

 

상대를 멸(滅)하는 과정에서 상호간의 출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증오와 분노로 오염된 승리가 아닌, 상대가 패배를 인정해서 항복하는 것, 항복을 받아내는 장수가 명장이라는 것이다.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손자병법의 오역 부분이다.

 

대선이 끝나고 윤석열 정권 창출에 대한 논공행상이 계속중이다. 예상된 절차지만, 정도가 지나친다. 전두환 정부가 육사 출신 쓰듯, 검찰 출신들이 날개를 달고 있다. 국정원 기조실장, 국무총리 비서실장, 금융감독원장에 임명된 사람들의 면면은 검찰 엘리트주의, ‘검찰이 최고’라는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현 정권의 국정 철학이 법치주의에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법치주의는 사람 대신 법과 원칙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인재가 검찰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정치의 영역은 법치의 영역보다 더 원대하다. 정치를 법대로 움직이는 데 집중한다면, 사람을 위한 정치는 실종된다. 이로 인해 사회 통합이나 약자 지원은 어려워질 것이다.

 

5공화국의 몰락은 육사 출신 ‘하나회’의 권력 장악 욕심에서 시작됐다. 정치를 해본 적 없는 검사들이 어떻게 나라를 경영할까 궁금하다. 특수통 검사들은 통합적인 민주정치와 정당 조직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아니다. 검찰은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하는 조직이다.

 

윤 대통령이 강조한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과정은 대등한 관계에서 자유로운 토론이 필요하다. 다양한 의견을 통해 결론을 끌어내는 과정에 익숙하지 않은 검찰 출신이 많다는 것에 대한 우려의 출발이기도 하다.

 

​ 국정을 사정기관처럼 운영한다는 논평들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도 불행하다. 내각책임제가 아닌 대통령제 국가에서 일개 법무부장관의 소통령 논란이 발생했다는 것 자체가 역사의 퇴행이다. 지역과 세대, 진영과 계층, 성별 등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는 국민의 걱정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순신은 말수가 적고, 행동이 신중하고 무거운 사람이었다. 상명하복을 따르지 않은 이순신의 행태를 중신들과 왕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바다에서 조선 수군은 일본에 절대 우위였으므로, 충분히 소탕 작전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무거운 판옥선으로 원거리 원정하기는 어려웠다. 전략적인 고민을 하는 이순신은 출정할 수 없었다. 1597년 2월 26일, 이순신은 파면되고 한성으로 압송되었다. 그 자리에 원균이 올라갔다.

 

원균은 있는 대로 끌어모은 160여 척을 이끌고 부산으로 향했다. 도중에 식수가 떨어졌고, 부산 앞바다의 거친 파도에 싸움도 하기 전에 지쳐버렸다. 조선 수군의 모든 배는 거제 칠천량에서 단 하루 만에 침몰했다. 이순신이 지켜 낸 바다는 무너졌고, 이순신이 키워낸 최고의 수군은 파멸했다.

 

“이 일은 어찌 사람의 지혜만 잘못이겠는가. 천명이니 어찌하겠는가.” 칠천량에서의 패전 소식을 접한 조정에서는 충격을 받았고 이후의 수습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 중에 선조가 했던 말이다.

 

분명한 것은, 왕조 국가에서 최종결정은 왕이 내린다. 원균에게 잘못이 없다. 패전은 단지 운이었다. 이런다고 군왕인 선조의 책임이 사라지진 않는다.

 

1597년 조선의 왕과 2022년의 대한민국 대통령이 지닌 무게감은 절대 다르지 않다. 역사는 지금보다 나중이 더 무서운 법이다. 평가에는 애초부터 시효가 없기 때문이다.

 

조조는 손자병법 서문에 이렇게 썼다. 예로부터 칼의 힘에만 의지하는 시무자도 패망하고, 붓의 힘에만 의지하는 시문자도 패망했다(恃武者滅, 恃文者亡).

 

사족, 검찰에 의한 싹쓸이! 질서(order)는 국민의 요구가 아니다.

 

사족, 아니겠지만 생각만으로도 소름이다. 안정이 공안이 될 가능성,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