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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스럽다. 을씨년스럽다’. 이젠 ‘계묘년 스럽다’를 추가한다.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용인신문] 1909년 7월, 덕수궁 함녕전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송별연이 열렸다. 조선 통감에서 물러나 추밀원 의장으로 영전한 것이다. 그의 자리는 부통감으로 있던 소네 아라스케가 물려받았다. 이날 송별연은 태황제였던 고종이 베풀었다. 때마침 비가 내리고 고종이 인(人), 신(新), 춘(春)의 석 자를 운(韻)으로 내려 시를 지어볼 것을 권했다. 이토와 이완용, 소네 등이 가세하여 다음과 같은 합작 시가 탄생했다.

 

-이토 : 단비가 처음 내려 만 사람을 적셔주고/감우초래점만인(甘雨初來霑萬人)-모리 : 함녕전 위에 이슬빛이 새로워지니/함녕전상로화신(咸寧殿上露華新)-소네 : 부상과 근역을 어찌 다르다 논하리오/부상근역하론태(扶桑槿域何論態)-이완용: 두 땅이 한집을 이루니 천하가 봄이로다/양지일가천하춘(兩地一家天下春). 위의 구절에 나오는 부상(扶桑)은 일본을 가리키는 말이고, 근역(槿域)은 한국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경술국치일은 1910년 8월 29일이다. 대한제국이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이완용은 “두 나라가 하나”라는 구절을 버젓이 읊조렸다. 

 

2023년, 제104주년 3.1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중략) 그로부터 104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대통령 기념사의 문제는 무엇일까? ‘세계사의 변화에 준비하지 못했다’라는 부분이다. 세계사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주체는 고종과 지배층이었다. 그들은 일방주의 외교 노선을 고집했다. 청나라에 대한 맹목적 의존, 미국과 러시아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대통령과 여당이 지향하는 외교는 세계사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비하고 있는가.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라는 부분은 더 심각하다. 일본이 지난 역사에 대해 참회하였는가. 아시아의 평화와 발전을 위한 협력적 파트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최근 일본의 혐한 현상은 일상이 되고 있다. 자민당은 헌법개정을 통한 재무장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천황을 중심에 둔 국가주의, 지배와 패권을 숭상하는 군국주의 이념은 메이지 시대부터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잃어버린 30년의 암흑기를 지나면서 아시아의 맹주라는 환상이 무너져, ‘이등 국가’로 전락했다는 불안감이 표출되고 있다. 일본의 극우들은 과거의 욱일기를 과감하게 흔들고 있다.

 

2022년에 죽은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을 전범국으로 규정한 도쿄 전범재판(1946년)의 해석을 거부했다. “침략의 정의는 학계에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라면서 ‘단죄의 대상인 극우적 전통을 되살려 놓았다. 특히 “종군위안부는 지어낸 얘기라면서, 일본이 국가적으로 성노예를 삼았다는 것은 근거 없는 중상모략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은 강제징용에 대한 정부의 계획을 발표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을 일본 전범 기업 대신 대한민국의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지급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는 2023년의 박진 외교부 장관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1905년, 을사늑약을 체결한 대한제국의 외부대신 박제순이 떠오른다.

 

사족1, 저 개돼지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은 자기 일신의 영달과 이익이나 바라면서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벌벌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던 것이다. 아, 4000년의 강토와 500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000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 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실린 시일야방성대곡의 일부 내용이다.

 

사족2, 2023년 3월에는 이런 신문도 없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