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6
이른 아침
박순원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이른 아침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배추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다 배추는 무슨 죄인가 배추는 술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인데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국을 끓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래 나도 눈망울을 갖자 슬픈 눈망울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가 몸이 데쳐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렁그렁 소 같은 눈망울로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나를 어쩔 것인가 아, 하나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꼭 오늘 아침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끔 먹는 동탯국 머리째 눈망울째 고아내는 시뻘건 그 국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이불 속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출근하기 전 따뜻한 이불 속, 잠시의 평화.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하루를 먼저 시작한 “아내가 배춧국을 끓”이고 있네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는 배추. 배추는 잘못이 없습니다. “술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 단 하나, 배추에게는 “눈망울이” 없습니다. 만약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국을 끓이지는 못했을”까요. “생각이 여기에 미”친 ‘나’의 다짐이 놀랍습니다. “그래 나도 눈망울을 갖자 슬픈 눈망울”. 눈망울에 대한 믿음이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동안 ‘자본’은 증식을 거듭하겠지요. “그렁그렁 소 같은 눈망울”도 소용이 없겠지요. 출근,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가 몸이 데쳐지는 일”이여! 풀리지 않을 질문이 이어집니다. “우리가 가끔 먹는 동탯국 머리째 눈망울째 고아내는 시뻘건 그 국은 무엇인가”. 이런 “지금 이불 속에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녜요. 잠시의 평화와 긴 불안.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