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를 먹으며 함민복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방울을 먹는다 사과를 연구한 식물학자의 지식을 먹는다 사과나무 집 딸이 바라보던 하늘을 먹는다 사과에 수액을 공급하던 사과나무 가지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세월, 사과나무 나이테를 먹는다 사과의 씨앗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자양분 흙을 먹는다 사과나무의 흙을 붙잡고 있는 지구의 중력을 먹는다 사과나무가 존재할 수 있게 한 우주를 먹는다 흙으로 빚어진 사과를 먹는다 흙에서 멀리 도망쳐보려다 흙으로 돌아가고 마는 사과를 먹는다 사과가 나를 먹는다 --------------------------------------------------------------------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사회정치학부 면접 질문 중 하나입니다. ‘당신에게 사과(apple)란 무엇입니까.’ 구약성경의 아가서에서 사랑하다 병이 난 여인은 사과의 힘으로 기운을 차리고자 했지요. 이 여인에게 사과 한 알은 생
나무와 까치 이상호 높은 나뭇가지에 세 들어 사는 새 세도 안 내고 집짓고 새끼 기르며 살기가 영 민망한지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까치발로 조심조심 걸어드는 새 그 마음을 아는지 나뭇가지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걸 쭉 지켜보는 하느님도 말없이 따뜻한 어둠을 펴서 함께 덮어준다 -------------------------------------------------------------------------- 한국 시사의 도저한 흐름 속에서, 이상호 시인은 서정의 문법을 내면화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변용시킨 우리 시대 뛰어난 서정 시인입니다. 그의 여덟 번째 시집 『마른 장마』(시로여는세상, 2016)에 담긴 시인의 말에서도 우리는 이러한 지향점을 만나볼 수 있지요. “시가 마음에 차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 마음이 더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시심의 물줄기가 점점 가늘어지는 탓이리라. 두렵다. 발길 드문 산속 조그만 옹달샘 같은 이마저 고갈될까 문득문득 하늘을 바라본다.” 무엇보다 우리의 눈길이 머무는 지점은 ‘시가 마음에 차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김정남 평론가는 시집 해설「오래 삭힌 슬픔으로 빚은 금빛 노래」
이은규의 시로 쓰는 편지 하우스 오브 카드 / 신혜정 손 안 대고 코를 풀 방법을 찾느라 코가 흐르는 것도 까맣게 모르고 이사 가서 쓸 세탁기를 고르느라 빨래가 쌓인 것도 잊어버려 이제는 더 이상 시를 못 쓸 것 같다고 말하다가 어느새 시가 오는 것도 잊은 채 그만 아아, 가습기를 선물한 남자애를 좋아했네 비 오는 줄도 모르고 창문을 꼭꼭 닫아둔 채 신혜정 시인의 전언에 귀 기울여봅니다. 시 속의 우연적인 상황은 일련의 사건의 반영이 아닌데, 이는 이 상황들이 일종의 내적 규칙에서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언뜻 시적 주체의 선택적 태도는 비본래적. “세탁기를 고르느라/빨래가 쌓인 것도 잊어버려” 정작 입을 옷이 없는 생활. “이제는 더이상 시를 못 쓸 것 같다고 말하다가/어느새 시가 오는 것도 잊은 채 그만//아아”. 망각의 망각, 상실의 상실은 일상이라는 몽타주를 통해 결국 삶으로 환원되는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끊는 일 혹은 이어가는 일, 실재의 윤리는 여기서 구축되겠지요. 자신의 환상을 실현하기 위해 완전히 몰입할 준비가 된 누군가에게 일체의 윤리적 존엄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쓰는 행위 속에서
밤은 누군가의 역 / 김학중 밤은 누군가의 역 순진하게 내려와 앉으며 정차하고는 지나간 이름들이 자라 나와 내리는 모든 바닥들 바닥에 시간이 뿌려두고 간 낱알들이 살이 올라 바람 부는 쪽으로 아무렇게나 서걱거려도 좋은 시간 바닥에 앉아야 기다림이 익지 아무 곳이고 역이 되지 나지막이 다들 내려주고 남는 바닥이야 잠드는 역을 떠나는 막차들은 불을 끄고 천천히 떠나가고 이제 남은 바닥은 흐릿하게 순진한 깊이 마감이 임박한 오늘에게 시간만이 데려다줄 수 있는 안식을 주는 깊이 아직 그날인 누군가 그대 그대로 붙잡아도 어둡기만 한 대답들이 충만해지는 가만히 내려앉아 등 뒤가 되어주는 누군가의 역 등으로 다가가는 일이 밤이라니 그대가 그대로 이날이었다니. -------------------------------------------------------- 이 겨울, 어느새 우리는 누군가의 역으로, 밤으로 떠나고 있습니다. 김학중 시인의 「밤은 누군가의 역」에 잠시 머물러 볼까요. 그는 “삶이 스스로의 삶을 두드리던 그 힘을 위하여 산다는 것이 창세인 시대를 위하여 아무런 선언 없이 선언을 완성하는 언어를 위하여 이것들이 다만 시작으로 무너질지라도. 괜찮다”라는 문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사막등대 / 김종경 별밤에도 불을 지펴 실크로드 순례자들에게 어둠 속 길을 안내하던 사막의 오아시스 가끔은 사형을 집행하던 절체절명의 전탑이었던 구원과 죽음의 등불이 동시에 타올랐던 사막에도 등대가 있다 --------------------------------------------------- 김종경 시인의첫 시집『기우뚱, 날다』(실천문학, 2017)를 기다린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의 시편들을 읽으며 체 게바라의 선언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갖자!”라는 문장은 문학의 길에 대해 시사점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시를 통해 살펴보면 “별밤에도 불을 지펴/실크로드 순례자들에게/어둠 속 길을 안내”할 수밖에 없는 이유. 그 도저한 진정성이 ‘사막 등대’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과 혁명의 공통점은 불가능한 것을 꿈꾼다는 것, 그를 통해 점진적으로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얼리스트 김종경 시인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바로 오고 있는 문학과 혁명의 시간일 것이다. 마치 저기서 “사막에도 등대가 있다”는 시적 전언처럼. 이은규 시인 yud
더 작은 입자보다 조그만 진수미 턴테이블을 느리게 회전하는 오보에 선율은 연주자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여주지 않네. 허나 소리를 삼키는 소리를 볼 때, 개미소리로라도 울어야 한다네. 목소리는 무엇입니까. 더 큰 것이 큰 것을, 큰 것이 작은 것을, 작은 것이 그보다 작은 입술을 감춰버릴 때, 자신의 진열대에서 말없이 천칭을 꺼내보는 자여. 저울은, 평등은 무엇입니까. 차라리 비대칭의 지워진 얼굴을 들고 뛸까요. 마구 편향된 날개처럼 돌아가는 세계, 프로펠러여 -------------------------------------------------------- 가을, 시 속에 등장하는 일그러진 얼굴을 그려봅니다. 나아가 들리지 않지만 존재하는 소리들에 귀 기울여 볼까요. 발화하는 존재의 최대 문제는 무언가 우리의 “작은 입술을 감춰버릴 때” 발생합니다. 시인의 존재증명은 시적 발화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말이지요. 그럴 때 우리는 시인과 같이 “차라리 비대칭의 지워진 얼굴을 들고” 뛰고 싶은 상태가 됩니다. 저울도 평등도 사라진 세계, “마구 편향된 날개처럼 돌아가는 세계” 내에서 존재의 현기증은 체화되겠지요. 어느새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존
기쁨과 슬픔을 꾹꾹 담아 최지인 미술관 구석에 쪼그려 앉아 속삭였다 내가 좋아하는 시야 나랑 함께 없어져 볼래?* 고스란히 녹음되었다 그때 창밖 바라보며 그런 적 있었다 눈 뜨면 네가 있었던, 부러 늦잠 자던, 쌓인 짐들을 단칸방 한쪽에 밀어놓던 네 살갗이 내 살갗에 닿았다 길가에 스포츠 양말 한 켤레 버려져 있었어 그런 걸 보면 부질없지 않아? 너에게도 풀리지 않는 일이 있겠지 늦은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더는 더러운 개수대를 방치할 수 없다, 개수대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 박스는 접어서, 페트병은 구겨서 정리하자, 마음만 먹었다 읽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은 마음, 아니야, 그런 건 없다 책꽂이에 꽂을 수 없는 책들이 쌓여 있다 등이 보인다 궁리할 거리가 많은 등 젊음을 다 바친 등 우리는 아직 젊고 앞으로도 젊을 거야 그 때문에 고통받을 거야 버는 돈이 적어서 요절 따위를 두려워해야 할 거야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은 많다 그중 하나가 사라지는 일 거기서 보았던 그림 기억해? 나는 너와 손잡고 그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 하나, 하고 둘, 하면 시작하자. 너 다음 내가, 나 다음 네가 번갈아 가며 또박또박 읽는다. 마치 그것은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모서리 박성현 저녁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정류장에 앉아 나는 두 가지 이미지를 상상한다 하나는 당신의 젖가슴 아래 붉은 반점이고 다른 하나는 맥도날드가 새로 만든 ‘시그니처 버거’의 기묘한 복고풍이다 유리문 앞에서 풍선을 든 남자아이가 엄마 품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 모서리 저편에서 물고기들이 파닥거렸다 * 모서리는 희거나 검고 가볍거나 단단하다 혀를 깊숙이 밀어 넣을 때마다 목구멍에서 흰 사각형이 쏟아졌다 271번 버스가 연남동을 지나 홍대로 꺾어지고 합정역에서는 열한 명의 사람들이 내렸다 당신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 우산을 펼치자 숨어 있던 햇볕이 후드득 떨어졌다 대리석 무늬처럼 행간이 깊게 패였다 우리의 비극은 어미를 잃은 새들이 함부로 버려진다는 것이다 * 가끔, 죽은 새들이 무릎을 접어 모서리를 꺼낸다 석면가루가 휘날리는 비탈에는 벚나무가 발가벗고 있다 트럭이 간신히 올라왔을 때 골목은 야구공처럼 구겨졌다 * 움켜쥔 조개는 단단한 껍데기를 벌리고 서둘러 굵은 모래를 토해냈다 오로지 잊어버리기 위해서 빈 악보는 격렬하게 운다 * 당신을 둘러싼 빛의 폭우…… 내가 당신을 처음 본 골
이은규 시인의 시로쓰는 편지 의자 차성환 의자는 나보다 먼저 태어났다 형이라고 불러야 하지만 나는 무시하고 궁둥이로 깔아뭉갠다 수많은 의자 위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나는 앉아있기 위해서 태어난 거 같기도 하다 의자는 계속 앉은 자세이고 늦게 태어난 나는 의자에 몸을 맞춘다 의자에 바퀴를 달고 앉은 채로 나는 어딘가로 간다 다시 태어나면 의자가 되어서 너를 앉혀주고 싶다 다 의자에게 배운 말이다 의자는 신나고 즐겁고 지루하고 끔찍하고 슬프게 앉아있다 의자는 책상과 상관없이 앉아있다 의자는 앉아서 잠이 든다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때까지 앉아있다 --------------------------------------------------- 이 여름 의자에 앉아 무슨 생각을 자주 하시나요. 오늘의 시와 함께 김수영 시인의「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를 떠올려 보는 것도 흥미롭겠지요. 오래 전 시인이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라고 쓸 때 오늘의 시인은 투명에 가까운 존재의 슬픔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의자는 신나고 즐겁고 지루하고 끔찍하고 슬프게 앉아있다 의자는 책상과 상관없이 앉아있다 의자는 앉아서 잠이 든다 다시는 일어날 수 없을 때까지 앉아있”지요. 시인은 그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자정의 심리학자 최서진 사람을 만나면 어항 속 같은 슬픔을 알게 된다 조금 더 멀어졌다 쏟아지는 별 무수한 빛깔의 고독을 알아볼 수 있도록 심리학을 읽는다 표정만 봐도 안다는 당신들의 말은 주저함이 없다 먼 곳에서 통증이 오는 것을 빗소리처럼 듣는다 어깨 너머에도 얼룩이 있다 전쟁과 수렵이 적나라하게 기록되는 밤 우리가 다 함께 이 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까 기마에 뛰어났지만 그래도 가장 슬픈 건 나일 것이다 그것이 내가 자정에 어항을 청소하는 이유다 밤새도록 닦고 또 닦는 것이 나에게 잘 어울린다 물고기가 숨죽이고 물고기를 분석하고 있다, 먼 오해로부터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고 있다 저녁을 지나 새벽, 마치 천 개의 터널 끝에 펼쳐져 있을 것만 같은 시각장들. 그러한 맥락에서 최서진 시인의 시적 주체는「자정의 심리학자」을 통해 인간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다 함께 이 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가 터널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터널이 우리를 통과하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심리가 아닌 “무수한 빛깔의 고독을 알아볼 수 있도록 심리학을 읽는” 존재와 같이. 우리는
용인신문 시로쓰는편지 시간이 사각사각 최승자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시간이 있습니다 사각사각 아름다운 설탕의 시간들 사각사각 아름다운 눈(雪)의 시간들 한 불안한 결정체로서의 시간들도 있습니다 사각사각 바스러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무너지는 시간들 사각사각 시간이 지나갑니다 시간의 마술사는 깃발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사회가 휙, 역사가 휙, 문명이 휙, 시간의 마술사가 사각사각 지나갑니다 DA 300 아하 사실은 (통시성의 하늘 아래서 공시성인 인류의 집단무의식 속에서 시간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입니다) (…) --------------------------------------------------- 최승자 시인의 근간 시집 『빈 배처럼 텅 비어』를 펼쳐 봅니다. 그는 시집 뒤의 짧은 산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기고 있지요. “구름의 말만 들으며 갈 길 못 가고 또다시 흐르기만 하였다 어디로 어디로라고 밤바람은 말하지만 고통처럼 행복처럼 기어코 올 그 무엇 그러나 참 더디다 하여간에 여하간에 갔다가 왔다.” 우리는 여기서 오늘의 시, 시간에 대한 사유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모든 존재에게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 전에 “한 아름다운 결정체로서의/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둘의 음악 김준현 두 갈래로 나뉜 이어폰이 귀와 귀로 이어져 있다 귀와 귀가 어긋나는 젓가락처럼 어긋나는 가락처럼 다른 귀와 닮은 귀 (…) --------------------------------------------------- 인간 너머의 세계에서 인간성을 사유하는 시 세계로 주목받은 신예 시인 김준현. 그의 첫 시집 제목은『흰 글씨로 쓰는 것』. 시인은 쓰였지만 보이지 않는 흰 글씨와 같이 모든 관계에 대해 ‘있지만 정말 있는가’라는 질문에 집중하는 듯 보입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저마다의 특수성으로 빛난다고 할 때, 사랑 역시 그러하겠지요. 그러나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싶지만, 너무 크고 무거운 슬픔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하는 사이가 있겠지요. 그 풍경은 마치 침묵으로 빚어낸 ‘둘의 음악’을 닮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스스로의 법칙을 쥐고 있는 자. “두 갈래로 나뉜 이어폰이/귀와 귀로 이어져 있”음을 바라봅니다. 카프카는 말했지요. 언제든 달리는 말의 고삐를 놓아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용기란 결단이란 그로부터 시작된다고. 세상을 바꾸는 일도 그 손에서 시작됨을 믿으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