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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2 |철수와 영희 |윤제림

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2

철수와 영희
윤제림


철수와 영희가 손 붙잡고 간다
철수는 회색 모자를 썼고, 영희는 빨간 조끼를 입었다
바둑이는 보이지 않는다
분수대 앞에서 맨손체조를 하고 있는
창식이 앞을 지날 때
영희가 철수의 팔짱을 낀다
창식이는 철수가 부럽다

철수와 영희가 벤치에 앉아
가져온 김밥을 먹는다
철수가 자꾸 흘리니까 영희가 엄마처럼
철수의 입에 김밥을 넣어준다
공원 매점 파라솔 그늘 아래 우유를 마시던
숙자가 철수와 영희를 바라본다
숙자는 영희가 부럽다

일흔두엇쯤 됐을까
철수와 영희는 동갑내기일 것 같고
창식은 좀 아래로 보인다
물론, 영희와 철수는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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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수와 영희’ 이야기. 둘이 사이좋게 “손 붙잡고” 걸어가요. 교과서에서의 모습 그대로 회색 모자와 빨간 조끼가 눈에 익습니다. 서운하게도 “바둑이는 보이지 않”네요. 인생은 타이밍, “창식이 앞을 지날 때” 기다렸다는 듯 “영희가 철수의 팔짱을” 낍니다. “창식이는 철수가 부”러울 뿐. 약속처럼 둘은 “가져온 김밥을 먹”기 시작해요. “철수가 자꾸 흘리니까 영희가 엄마처럼/철수의 입에 김밥을 넣어”줍니다. 표정이야 묘사할 것도 없겠지요. “숙자가 철수와 영희를 바라”봅니다. 타이밍의 인생, “숙자는 영희가 부”러울 뿐. 문득 “일흔두엇쯤 됐을까” 묻습니다. 짐작해보면, “철수와 영희는 동갑내기일 것 같”다네요. 비밀인 듯 시치미 기법, “물론, 영희와 철수는 부부다”. 시인이 말했어요. “낡거나 모자란 것들 쪽에 관심이 많이 간다. 물건이 그렇고, 사람이 그렇다. 노인들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어린아이들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까닭을 생각한다.”(시집 『그는 걸어서 온다』, 시인의 말에서) 한 때 어린아이였을, 세상의 모든 철수와 영희에게.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