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7
자고 새면
-벗이여 나는 이즈음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란 것을 생각고 있다
임화
자고 새면
이변을 꿈꾸면서
나는 어느 날이나
무사하기를 바랐다
행복되려는 마음이
나를 여러 차례
죽음에서 구해 준 은혜를
잊지 않지만
행복도 즐거움도
무사한 그날그날 가운데
찾아지지 아니할 때
나의 생활은
꽃 진 장미넝쿨이었다
푸른 잎을 즐기기엔
나의 나이가 너무 어리고
마른 가지를 사랑키엔
더구나 마음이 앳되어
그만 인젠
살려고 무사하려던 생각이
믿기 어려워 한이 되어
몸과 마음이 상할
자리를 비워 주는 운명이
애인처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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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화, 낯선 시인일수도 있겠습니다. 그는 한국 근대 100년사의 질곡을 온몸으로 겪었던 대표적 문인이지요. 시인, 문학평론가, 문학사가, 영화배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했던 열정의 인물인데요. 특히 프로문예운동사에서 독보적인 이론가 ‧ 실천가였지요. 안타깝게도 북녘 땅에서 비운의 삶을 마칩니다. 이러한 이력을 접어두더라도, 요즘 읽는 그의 시편들은 아득하기만 합니다. ‘자고 새면’이라는 제목에서부터 하루하루 평탄치 않았던 삶이 느껴지는데요. 부제는 또 얼마나 간절한지요. 우리 역시 ‘이즈음 자꾸만 하나의 운명이란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고 새면/이변을 꿈꾸”는 날이 벌써 오래입니다. “어느 날이나/무사하기를 바”라면서요. “행복도 즐거움도/무사한 그날그날 가운데/찾아지지 아니할 때/나의 생활은/꽃 진 장미넝쿨”입니다. 저 혼자 탐스러웠다 저 혼자 지고 있을 붉은 장미의 나날인데요. 시의 마지막 풍경을 옮겨보면, “푸른 잎을 즐기기엔/나의 나이가 너무 어리고/마른 가지를 사랑키엔/더구나 마음이 앳되어” 서성이는 발자국이 고백합니다. “운명이/애인처럼 그립다”고 말이지요. 그럼에도 우리의 역할은 외침을 나누는 것. 시인이 외치고 있듯, “마지막을 그리워/눈물짓는/한 사람을 위하여//원컨대 용기이어라.”(「9월 12일」중)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