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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38 |비인간적인 |김현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38


비인간적인

김현



밤이 떠돌아 왔습니다. 인간은 헐벗은 몸 어둡고 웅크린 인간의 욕조 속으로 들어갑니다. 처음 물이 닿은 인간의 발가락 끝부터 쑥빛 비늘이 쑥쑥 돋습니다. 인간은 오랜만에 미끈거리는 감촉에 젖습니다.

인간은 두 다리보다 지느러미에 맞는 생물이야.

인간은 되뇝니다. 인간의 침대에 걸터앉아서 인간은 목을 늘립니다. 늘어진 목과 머리는 여럿이 나눠먹을 수 있는 인간의 밥상을 두리번거리며 불어터진 먼지를 쓸고 인간의 욕실까지 흘러갑니다. 흘러온 얼굴이 인간의 지느러미를 따라 움직입니다. 인간은 아가미로 숨 쉬고 숨죽입니다.

인간의 호흡을 잃었구나, 인간.

인간의 표정이 백랍처럼 빛납니다. 인간의 목덜미가 납빛으로 찢어집니다. 점점 희미해지는 어린 인간이 찢어지는 인간 곁으로 와 앉습니다. 어린 인간은 자라나는 혀를 불규칙적으로 잘라내며 모처럼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발명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말을 하지 않아도 돼!

늘어난 인간은 더듬거리고, 사라지는 인간의 혀들은 꿈틀거리고, 변신한 인간은 한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갖고, 멈춰있습니다. 욕조의 수면이 밤의 수면까지 밀려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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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입니다. 김현 시인은 등단을 하며 “세상에 없을 수밖에 없는 시를 쓰겠다”고 선언했지요. 과연 ‘세상에 없을 수밖에 없는 시’란 무엇일까. 소비 대상이 되는 새로움의 추구가 아닌, 인간과 세계에 대한 도저한 시적 탐구의 태도와 그 산물이라고 봐야겠습니다. 한편 그는「게리가 무어라고 하든 복제품을 위한 추도사」라는 시에서 전설의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Gary moore)를 불러냅니다. 그러나 이 시는 죽은 기타리스트와 악기의 연대기가 아닌, 그의 기타들 즉 복제품과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들려주지요. 손가락이 잘리는 산업 재해의 위협 속에서 일평생 기타를 만들었지만, 하루아침에 해고되고 마는 노동자의 실존을 환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시 역시 정황이나 인과 관계보다는, 인간과 비인간에 대한 질문과 잠정적 답 그리고 미래를 고민해보는 방식의 독해가 더 유효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호흡을 잃”어버린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우리에 대해.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