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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1 |자기소개 |다니카와 슌타로

이은규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41


자기소개
다니카와 슌타로


저는 키 작은 대머리 노인입니다
벌써 반세기 이상
명사 동사 조사 형용사 물음표 등
말들에 시달리면서 살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저는 목수 연장 같은 게 싫지 않습니다
또 작은 나무를 포함해서 나무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것들의 명칭을 외우는 일은 서툽니다
저는 지나간 날짜에 별로 관심이 없으며
권위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팔뜨기이고 난시고 노인입니다
집에는 불단(佛壇)도 신위(神位)도 없지만
방 안에 직결되는 커다란 우편함이 있습니다
저에게 수면은 일종의 쾌락입니다
꿈을 꾸어도 눈만 뜨면 잊어버립니다

여기서 쓴 것은 다 사실인데
이런 식으로 말로 표현하면 왠지 수상하네요
따로 사는 자식 두 명 손자 손녀 네 명 개나 고양이는 없습니다
여름은 거의 티셔츠 차림으로 지냅니다
제가 쓰는 말은 값이 매겨질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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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무탈하게 지내고 계신지요. 오늘은 저마다의 마음에 시인의 인상을 그려보기로 해요. 그는 왜소한 대머리 노인이지만 반세기 이상의 시적 구력을 지닌 일본의 시인. 숙명처럼 말들의 세계에서 살아온 세월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무관심을, 권위에는 반감을 갖고 있다는 고백도 이어지네요.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시인의 시간관과 가치관을 짐작하게 됩니다. 대머리도 모자라 굳이 사팔뜨기에 난시임을 강조하는데요. 그런가하면 집에 불단(佛壇)도 신위(神位)도 없다는 걸 보니, 시를 혹은 삶을 종교로 삼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우리의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은 “방 안에 직결되는 커다란 우편함이 있습니다”라는 문장이지요. 세상의 모든 안부들이 도착할 것 같은 우편함이지 않습니까. 이 우편함에 도착하는 소식은 기쁜 소식도, 슬픈 소식도 아닌 다만 누군가의 마음이 아닐까요. 이 순간 겨울의 우편함에 도착하고 있을 안부, 그리고 새로운 시.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