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5 (수)

  • -동두천 26.7℃
  • -강릉 22.9℃
  • 서울 26.1℃
  • 대전 24.3℃
  • 대구 25.4℃
  • 울산 26.2℃
  • 박무광주 29.2℃
  • 구름많음부산 29.5℃
  • -고창 26.8℃
  • 흐림제주 33.6℃
  • -강화 25.4℃
  • -보은 21.9℃
  • -금산 25.8℃
  • -강진군 30.1℃
  • -경주시 24.9℃
  • -거제 29.9℃


-쑹화강은 여유로웠고, 아무르강은 멀리있었다-





부여가 사라진 북만주는 개마무사의 고구려였으며, 해동성국의 발해였다.


 북간도에는 무수한 역사가 땅속에 묻혀있다. 부풀어 올라 농염한 검붉은 땅은 징징거렸다. 바람은 가슴을 후벼 파내고도 부족한지 귓가에서 앙앙댄다. 가을볕에 알알이 여문 옥수수는 꽉찬 풍성함으로 반짝거렸다. 밥을 먹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는 인간에게 흙덩이를 밀고 올라왔을 강인한 생명력이 이 너른 땅, 만주의 삶을 억척스럽게 이어온 동력이다.


 지나온 시간속에 돌들은 무너져갔고, 집들은 사라졌으며 사람들은 흩어졌다. 소멸된 왕조의 역사를 밀어 낸 세월은 푸순의 북쪽 고이산에 흩어져있다. 산속깊은 성안에서 발굴된 500여점 무기에서 전쟁의 살기는 사라졌고, 100개의 완전한 질그릇과 화폐에선 사람의 온기를 찾을 수 없다.


 신성의 남쪽으로 흐르는 혼하는 연신 요하로 물들을 내려보냈다. 밀어내는 물의 기세에 편승한 고구려의 개마무사는 혼하를 이용해 요동으로 진출했을 것이다.     1619년, 이 물길을 역으로 따라 들어 온 명나라는 중국사의 운명을 가르는 사르후에서 후금의 누루하치에게 대패했다. 만주를 통일한 건주여진은 혼하를 타고 내려가 산해관을 넘어 중원대륙을 접수했다.


 삶과 죽음이 뒤엉켰던 땅은 적막강산으로 잠들어 있다. 휘엉찬 한가위 보름달을 길삼아 오랜 시간을 걸어서 천리장성의 끝점인 성자산에 도착했다. 장백산맥의 지맥인 길림 합달령의 여맥에서 뻗어나온 요북지역의 명산인 이곳은 부여성으로 추정된다. 성의 둘레가 4km가 넘은 포곡식의 성으로 만명이상의 군사가 주둔했던 대형 산성이다.


발길은 다시 부여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옮겨졌다. 기록과 전설은 버려지고 ‧ 삭제되고 ‧ 복원되어 전승된다. 이곳에 원래 부여가 있었다. 늘 있었으나 잊고 있었을 뿐이다. 고구려의 출발점은 부여의 끝점과 교집합으로 만나 합집합으로 수용된다. 엄정하고 냉혹한 역사를 미려한 수식어로 위로하지 말자.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시조편]에 ‘부여왕 해부루가 늙을 때까지 아들이 없었다. 그는 산천에 제사를 드려 아들 낳기를 기원하였다. 하루는 그가 탄 말이 곤연에 이르렀는데, 말이 그곳의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기고 사람을 시켜 그 돌을 굴려보니,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 아이가 있었다.’ ‘해부루가 죽자, 금와가 왕위를 이었다. 이 때 금와는 태백산 남쪽 우발수에서 한 여자를 만나 그녀의 내력을 물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나는 하백의 딸이고, 이름은 유화이다.’


 수면이 거울같은 흑룡강성 목단강 상류의 경박호에서 주몽의 어머니인 유화를 만날 수 있으려나. 호수는 고요했지만 수시로 뜨는 유람선이 유화를 쫓아낸 하백처럼 자주 나타났다.


 길림시에 흐르는 쑹화강은 우리에게 친숙하다. 깊게 가라앉은 듯이 조용한 강 주변이 [자치통감]에 나오는 부여의 원거주지 녹산(鹿山)일까. 도심 한복판에 세워놓은 사슴상은 주변의 남성자 토성과도 잘 어울린다. 넉넉하고 완만한 토성은 허물어진 것인지, 원래부터 낮은 성이었는지 사슴들이 뛰어놀기 좋아보였다. 방치된 주변의 유곽무관(有槨無棺) 무덤들에서 출토된 칠기와 등자, 안장과 귀걸이 들이 왕족과 귀족이 쓰던 물건들로 추정될 뿐이다.


 사람들에게 산은 신성화되었고 강은 인간화 되어 우리곁으로 다가왔다. 마을과 마을 사이를 흘러 삶을 이어주는 생명의 강물은 수평으로 모아지고 합쳐진다. 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한 쑹화강을 젖줄로 삼은 부여에게 흑룡강은 터전이었고, 아무르 강은 생명수였다. 기어이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는 북만주의 물줄기 사이에 자리잡은 용담산성에 올라 잡히지 않는 부여를 불러 들였다.


 내가 걸어 온 길의 원래 주인은 수많은 주몽이었다. 바람의 나라 부여국을 눈으로 보았지만 손으로 기록할 수 없었다. 떨리는 걸음걸이는 흐느적거렸고, 정신은 혼절을 거듭했다.


 [위지 동이전]에 나오는 부여 사람들은 ‘성품이 강직 용맹하며 근엄하고 후덕하여 다른 나라를 노략질하지 않는다.’라고 했었던가. 차가운 만주벌판의 정월, 하늘에 감사를 올리던 예맥족 부여인들의 기도발이 우리에게로 온 것인지 답사 여정(旅程)은 ‘화양연화’였다. 우리는 이제 발해로 떠난다.


 오룡(오룡 인문학 연구소 소장, 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


포토리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