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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이 게임에서

이미상(시인)

 

[용인신문] <오징어 게임>을 뒤늦게 정주행 했다. 끔찍했고 슬펐다. 충격이었다. 컴퓨터 게임이 전쟁을 게임으로 즐기는 거라면 반대로 오징어 게임은 우리의 놀이를 리얼 생존 게임으로 만들었다. 오징어 게임을 보며 필자는 또 다른 영화 「시민 케인」이 생각났다.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크게 성공한 사업가인 케인은 죽는 순간 “로즈버드”라고 외치고 숨을 거둔다. 기자는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케인의 삶을 역추적 해나간다. 아내와 자식의 죽음, 애인의 자살, 정의롭고 혈기왕성했던 20대와 탄광촌에서의 가난했던 유년시절까지. 그러나 집요한 기자도 로즈버드를 알아내지 못한다.

 

결국 케인의 유품들은 경매에 팔려나가고 남은 물건들은 소각시키기로 한다. 그 곳에 케인이 유년시절 탄광촌에서 타던 눈썰매가 있었다. 썰매를 불더미에 집어넣을 때 그 썰매 밑바닥에 ‘로즈버드’라고 씌어 있었다. 오직 관객만이 로즈버드를 볼 수 있었다. 오징어 게임에서 1번인 우일남 노인에게도 로즈버드는 유년시절이었던 것일까. 억만장자의 삶도 진짜로 의욕이 없이 심심할까.

 

드라마 시작 부분에서 게임은 누군가의 실제 게임이라는 것을 눈치 챘다. 경마장 장면에서 힌트를 얻었고 또 이미 <트루먼 쇼>를 알기 때문이었다. 트루먼 쇼 이후 우리는 실제 그런 쇼를 즐기고 있다. TV카메라는 이미 부부의 침실까지 점령해버렸다. “내 마음의 보석 상자”는 더 이상 보석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트루먼 쇼의 세상이 현실이 되었듯이 오징어 게임의 세상 또한 현실이 될지 모른다. 아니 우리 삶이 게임이며 드라마이다. 이미 게임은 시작되었다. 거부하기도 전에 우리는 게임에 참가해버렸다.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 이들은 현실에서 극한 상황에 몰린 자들이다.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다. 그래서 그 잔인한 게임에 스스로 참여한다. 생존 게임에서 선과 악은 없다. 살아남는 것이 선이다. 인간적으로 보였던 456번 기훈도 구슬치기 게임을 하면서 노인을 속인다. 그러나 그를 비난할 수가 없다. 살아남아야 하기에 이해한다, 생존 게임에서 양심은 필요 없다.

 

천장에 매달린 돼지 저금통은 태양처럼 빛난다. 돈이 쏟아지는 저금통은 신이다. 돈이 신앙인 시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최영 장군의 말은 이제 교과서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돈은 신(神)도 선(善)도 사랑도 그 무엇도 다 이겼다.

 

“자네는 사람을 믿는가.”

 

살아남기 위해 의리도 약속도 양심도 다 저버린 이 살벌한 게임에서 오롯이 자신을 내어준 사람 ‘지영’. 엄마를 죽인 아버지를 죽인 ‘지영’이는 구슬치기 게임에서 목숨을 ‘새벽’ 에게 내어준다. “반드시 이기게 해 줄게” 라고 말한 약속을 지킨다. 캄캄한 밤이 온 몸을 던져 새벽을 세상에 보내듯이 지영은 기꺼이 자신을 바친다. 기다리는 이가 없어 돌아갈 곳이 없는 가장 약하고 외로운 존재. 그의 희생으로 새벽은 살아서 기훈과 약속을 하고 기훈은 상우엄마에게 새벽의 동생을 맡긴다. 이렇게 지영의 향기와 빛들이 면면히 세상을 밝힌다.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빛을 이어간다. 아버지의 성을 버린 그냥 지영이인 지영이만이 이타심을 보여주었다. 가장 외로운 빛. 그 빛은 새벽과 기훈에게 전해져 다시 어두운 골목을 비춘다.

 

노인은 기훈에게 몇 번이고 묻는다. "자네는 아직도 사람을 믿나?" 인간에 대한 믿음은 나이들 수록 시들어간다. 자신의 목숨과 밥그릇이 달린 일이라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인간이기에.

 

너무 심심하여 어린 시절 놀던 놀이로 실제 게임을 해보고 싶어진 오일남 노인처럼, 지금 컴퓨터 게임 속에서 총을 쏘고 아이들이 자라 컴퓨터 게임이 아닌 실제 현실에서 게임을 하고 싶어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미 인간은 그런 전쟁 게임을 해왔고 앞으로도 게임은 계속 될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게임보다 더한 게임이 현재진행중이다. 끔찍한 오징어 게임은 우리 현실이다. 잔인한 영화나 드라마들보다 현실은 더 드라마틱하고 비현실적이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 결국엔 모두 다 죽는 이 삶이라는 게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