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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닫힌 문 너머에서ㅣ이혜미

닫힌 문 너머에서

                                           이혜미

 

곁을 비우며

멀어지는 손끝처럼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고 그 문을 떠날 때

 

우글거리겠지, 썩고 마르고 흐르고 무뎌지겠지, 사그라들다 환해지겠지, 먼지를 품겠지

 

새로 지은 어둠을 선물하면

오래 닫아둔 문 뒤는 흑백이 우거지는 입체가 된다

 

약속이 저마다의 문이라면 모두가 열쇠를 내버리고 함몰하는 방들

 

겹겹의 미로 속에서

오랜 다짐이 무너진 뒤에야 짐작하지

닫힌 눈꺼풀이 몸의 가장 어두운 뒷면이었음을

 

이혜미(1988~)는 경기도 안양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2006년, 최연소인 19세에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보라의 바깥』『뜻밖의 바닐라』 등이 있다. 이희섭 시인이 아버지고 정용화 시인이 어머니인 시인가족이다.

「닫힌 문 너머에서」는 죽음을 노래한 시로 읽힌다. 닫힌 문은 삶이 닫힌 문일 것이다. 하나의 문장을 완성했다면 일생을 끝냈다는 의미다. 묘지에 묻힌 사람 때문에 썩고 마르고 눈물 흐르다 무뎌질 것이다. 시신은 사그라들다 뼈가 환해질 것이며 먼지로 바뀔 것이다. 새로 지은 어둠은 결국 무덤일 것이고 무덤 속은 흑백이 우거진 지하 세계가 될 것이다. 약속이 문이라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아서 열쇠를 버려야 할 것이고 방들은 함몰 될 것이다. 그렇다. 산다는 건 겹겹의 미로다. 그리하여 오랜 다짐이 무너진 뒤에, 혹은 죽음 후에 죽은 자의 닫힌 눈꺼풀이 가장 어두운 뒷면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문학과지성사 간 『빛의 자격을 얻어』 중에서. 김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