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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투표장으로 가라

유권자에게…
세상이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투표는 ‘나’를 위해 ‘내가’ 하는 행위다 

 

[용인신문] 요(堯)는 중국 전설 시대의 인물이다. 그는 어진 임금이었다. 시대의 요구사항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백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줄 알았다.

 

사마천은 <사기>에 요임금의 사람됨을, “그의 어짊(仁)은 하늘과 같았고 그의 지혜는 신과 같았다. 백성들은 그를 해처럼 따랐고 구름처럼 바라보았다. 부귀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사람을 깔보지 않았다.”라고 기록했다.

 

이순신은 악전고투 끝에 이겼다. 절망에서 맞서야 했던 그의 삶은 언제나 일자진(一字陣)이었다. 물러설 수 없었던 명량에서 이순신의 싸움은 일 대 백이었다. “헤아릴 수 없는 적선이 몰려온다”라는 보고에도 그는 진중했다.

 

임진년과 정유년의 조선은 이순신의 칼이 펜보다 강했다.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 지금의 언론기관)의 펜이 강했다면, 지금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내 어린 시절 할머니는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곤 했다. 왼손에 참빗을 들고. 손자는 할머니의 머리를 빗어서 비녀를 이용해 쪽머리를 해드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야 오른팔이 없는 할머니에 대해 알게 됐다.

 

전쟁은 40대의 젊은 여인에게 평생의 고통을 남겨 준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고령 박씨의 후손임을 강조하며 꼿꼿했던 할머니는 “평화가 최고란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알아야 할 것은 분노의 본질이 아니다. 분노의 위치가 중요하다. 40여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겨놓은 유산(遺産)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요즘, 자주 절망한다. 20대 대통령 선거와 관련된 모든 것들에.

 

이재명, 윤석열. 이들이 누구인가. 공통점은 남자들이다. 한때 법 관련 일들을 업(業)으로 삼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 유력 후보들이다.

 

누가 됐든 두 후보 중의 한 명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다. 앞으로 5년 동안 행정부를 이끌 권력을 위임받은 일꾼이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통치’ 행위를 한다고 하는데 그 단어도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통령은 무소불위의 강제력을 휘두르는 최고 통치자가 아니다. 국민의 합의를 끌어내는 능력으로 평가받는 거버넌스의 직능인에 가깝다.

 

20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합의를 이끄는 능력이다. 서로의 불협화음과 갈등을 조절하고 설득하고, 갈등이 최소화되도록 하고 최대한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묶는 그런 능력들 말이다. 법에 대해서도 해박하고, 말도 잘하면 좋고, 논리에 능하면 더 좋고, 행정적 경험이 풍부하면 금상첨화다.

 

이런 검증을 해야 할 기관이 펜을 들고 있는 언론이다. ‘모두 비호감. 찍을 후보가 없는 역대급 선거.’라는 언론의 호들갑이 유난스러움에 분노하는 이유는. 언론은 자기들이 싫어하는 사람을 대통령이 못 되도록 만들기 위해 갖은 훼방을 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그 의미도 불분명한 ‘비호감’과 ‘도덕성’을 남발하는 것이다.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란 없다.

 

최근의 언론은 권력자를 보호하는 안전핀으로 활용하는 선거 공보지에 가깝다. 언론의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일 뿐이다. 언론 소비자인 보통의 우리는 권력자가 아니다. 2022년도의 대한민국 언론은 권력을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역대급 비호감 언론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나를 위해’ 투표하는 것이다. 유일하게 우리가 권력을 쥐고 있는 이 순간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그러므로 기권은 선택이 아니다. 개인의 기본적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언론과 권력에 패배하는 것이다.

 

약자를 무시하는 권력은 사라져야 한다. 자신이 권력자라고, 가진 자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약자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가끔 자기도취와 연민에 빠진 척할 뿐이다. 그것도 딱 한 번, 지금이 바로 ‘하는 척’하는 시간이다.

 

인류문명의 출발은 인간착취로부터 시작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착취는 그 무엇의(국가, 민족, 조직 등) 이름을 걸고 지속해서 이어진 것도 확실하다. 민주주의와 평등을 가르쳤던 학교조차도 체벌을 정당화했다. 교실의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사를 위한 편의성에 의해.

 

뜬금없이, “사람답게 살지 않으면 어때요. 우린 살아있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외치는 다자이 오사무처럼 살고 싶지 않다.

 

오늘 투표하는 이유다.

 

오룡(평생학습교육연구소 대표/오룡 인문학 연구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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