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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래호 진주유씨 목천공파 종친회장을 애도하며

박숙현(본지 회장)

 

[용인신문] 유래호 진주유씨 목천공파 종친회장이 지난 23일 갑자기 작고해 안타깝기 그지없다. 유 회장은 지난 25일 진주유씨 세거지인 용인 처인구 모현읍 한국외국어대학교 뒷산 정광산 자락 조상들 곁에 잠들었다.

 

그는 문통, 언문지 등 100여 권의 저술을 남긴 조선의 3대 신동으로 불리는 유희의 4대손으로 한창 유희 선양사업을 하던 중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다.

 

그의 나이 96세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장수하셨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못 다 이룬 문중의 과업은 그를 차마 편히 눈감지 못하게 하셨으리라. 지난해까지만해도 95세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문중 현양 사업에 열정을 바치고 있었다.

 

100여 년의 삶을 범부로 살아온 듯해 보이지만 그의 인생 여정은 보통 사람들의 삶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의 삶은 오랜 역사에 맥이 닿아있었다. 어쩌면 유희와도 희미하게나마 간접적인 맥이 닿아 있던 유일한 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유래호 회장은 일제 강점기인 1938년, 11살의 어린 나이에 고조할아버지인 유희가 남긴 문통을 나무 고리짝에 넣어 짊어지고는 경기도 양주 덕소 본가에서 경북 예천의 안전한 곳으로 옮겨 보존한 인물로 오늘날까지 문통이 전해지게 한 인물이며 목천공파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몇 분 안남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유 회장의 총기는 96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여서 주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호탕하고 논변이 정확하고 매사 치밀하며 기억력 또한 천재적이었다.

 

유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은 용인향토사의 손실이자 우리 역사의 손실이라고 할 수 있다. 유 회장이 자신의 생전에 이루고 싶어 했던 과업 중 문중사 발간 사업만 완료한 상태이다. 지난해 여름, 문중사를 손에 들고 기뻐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유 회장은 자신의 나이를 고려해 생전에 최소한 유희와 유희의 어머니인 태교신기 저자 이사주당의 대중화 작업 및 이사주당과 유희 묘를 경기도지정문화재로 등재시키는 사업까지만이라도 완료하고 싶어 했다.

 

유래호 회장은 젊은 시절에 연극배우를 꿈꿨었고, 못 이룬 연극배우 꿈을 대신해 한 때 영화 ‘72호의 죄수’ 제작에 직접 뛰어드는 등 예술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또 그의 삶에는 독립운동가인 작은아버지 유근영과 외삼촌 여운형, 인민군에게 총살당한 아버지 유운영의 비극적 죽음에 이르기까지 암흑과 혼돈의 근현대사가 점철돼 있었다.

 

특히 용인 모현읍 골말에서 출생한 유 회장의 아버지 유운영의 첫째 부인이 독립운동가 여운형의 누이동생 여운현이었던 점은 유회장의 기억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유 회장의 부친과 여운형은 처남매부지간으로 서로 잘 통했고 사업도 함께 의논하던 사이었다. 여운형이 암살당했을 때 유 회장의 부친이 상을 주도했다. 서울에 살던 외가를 따라 양주 덕소로 이주한 후에도 유 회장이 어렸을 때 여운형은 덕소 집에 자주 오갔던 기억이 또렷하다.

 

이런 수많은 일화와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유래호 회장의 갑작스런 죽음은 또 하나의 큰 별이 지는 아픔이다. 이제 남은 후손들은 유 회장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을 이뤄드리고 후손들이 해주길 바랐던 그 이후의 중요한 종중 사업을 무리 없이 진행하면서 진주유씨 문중과 목천공파의 찬란했던 역사를 대대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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