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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김종경 칼럼
‘숲속나라’ 왕을 뽑는 날

 

숲속 전역에 전염병이 퍼져 동물들의 아우성

생사의 갈림길... 지혜로운 새로운 왕 뽑아야

너도나도 “위기를 구할 수 있다” 아무말 대잔치

종족 대리전... 현명한 한표 ‘평화의 숲’ 지름길

 

[용인신문] 

온갖 동물들이 모여 사는 ‘숲속나라’에서 며칠 후면 새로운 왕을 뽑습니다.

선거 때문에 숲속나라 동물들이 벌써 여러 패로 나뉘었어요. 크게는 네발로 걷는 동물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로 편이 갈렸고, 작게는 생존 구역과 먹이 습성에 따라 권역별로 분산되었습니다.

동물의 왕국에서도 왕을 뽑는 선거는 가장 큰 축제랍니다. 선거야말로 숲속 위계질서를 바로잡는 최고의 이벤트인 셈이죠. 온갖 종류의 동물들은 자신들의 대표가 왕이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야 숲속 생활에서의 안전과 번영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솔직히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같은 종족끼리 굶어 죽게 내팽개쳐 두진 않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이번 선거엔 그동안 침묵을 지켜왔던 땅속 두더지, 뱀의 대표인 능구렁이, 심지어 독거미와 부엉이, 늙은 독수리까지 출마했으니 후보들의 숫자가 장난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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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별 후보들은 저마다 전문성을 내세워 숲속나라의 먹거리와 쉼터, 그리고 외부의 침입을 무력화시킬 다양한 공약을 쏟아냈습니다. 그중엔 꽤 쓸 만한 공약도 있지만,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공약도 많았지요. 그래도 숲속나라 동물들은 선거야말로 동물의 왕국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기회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아! 가장 기억에 남는 공약 중 하나는 숲속나라의 공식 언어를 힘센 멧돼지 말로 통일하자는 것이었는데, 누구 하나 들은 척도 안 했다는 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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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일이 다가올수록 판세의 윤곽이 드러납니다. 유력후보 중 하나는 먹거리 확보 경험이 많다며 먹이 사냥의 전문성을 자랑합니다. 반면, 또 다른 후보는 못된 왕들을 혼낸 경험이 있다며 숲속나라를 법치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다른 동물들이 보기엔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개무시하면 그만이지요. 그래서인지 고요했던 숲속은 동물들의 외침으로 더욱 시끄러워졌고, 진실과는 무관한 ‘아무 말 대잔치’가 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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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새를 닮아 점잖아 보이던 어떤 후보는 갑자기 누가 되든 패싸움으로 숲이 불타버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하지만 비현실적인 그의 외모 때문인지 같은 종족의 호응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맹금류 중에서 유일하게 출마한 솔개 후보는 먹이 사냥 시간을 파격적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인 동물들 처지에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요. 참새들조차 침묵하는 바람에 소문은 더 퍼지지 않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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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라에서 대놓고 급진적 혁명을 부르짖던 캥거루 후보는 선거 때마다 평생 먹고 살만큼의 먹이와 일자리를 책임지겠다고 공약했지요. 얼핏 보기엔 가장 솔깃한 공약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동물들은 현실과 이상이 얼마나 다른지 잘 알아요. 이번 선거에서도 캥거루 후보가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이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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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라 왕을 뽑는 선거는 오 년에 한 번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말만 평화로운 왕권 교체일뿐, 먹히고 먹히는 생존의 전쟁터가 되었답니다. 예전엔 그래도 육지 동물과 하늘을 나는 새들이 번갈아 가며 왕위를 차지했었죠. 왕의 능력은 다른 동물들과의 영역 다툼과 먹거리 배분을 얼마나 균형 있게 잘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기 마련입니다. 그런데도 왕의 리더십 발휘가 쉽지 않은 이유는 모든 동물의 욕망과 환경이 천태만상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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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시대를 제외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숲에서는 호랑이와 사자가 교대로 수백, 수천 년을 왕으로 군림했습니다. 이곳 숲속나라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호랑이가 일찌감치 왕에 추대됐고, 오랫동안 무탈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거듭되는 가난과 홍수, 심지어 외세 침입이 빈번해지면서 민심이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에요.

바야흐로 숲속나라 호랑이 왕은 동물과 새들의 거센 반발로 자의 반 타의 반, 독재를 청산하게 되었지요. 엄밀히 말하자면 탄핵이지요. 숲에서 쫓겨난 호랑이 왕 일가는 이미 전설이 되었지만, 간간이 숲속나라 밖 인간세계 동물원에서 봤다는 소문만 들려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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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라 역사 역사기록에 의하면 호랑이 이후엔 여우와 늑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왕이 된 적도 있답니다. 육지와 하늘의 동물들이 온 힘을 합쳐 결국 그놈들은 왕좌에서 끌어내렸지만, 왕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해괴한 사건들은 오랫동안 상처가 되었답니다. 이후 반역자들은 컴컴한 동굴 속으로 유배를 보냈지만, 결코 후회나 반성이 없었다는 기록도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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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라 동물들이 가장 경멸하는 것은 총이나 칼로 동물들을 다스리는 것이래요. 그건 못된 인간들이나 하는 짓이란 걸 알고 있기에…. 숲속나라 동물들은 평화로운 숲을 만들 힘 있고 능력 있는 왕을 필요로 합니다.

현재의 왕은 원래 순한 양입니다. 지상의 수많은 동물의 권유로 출마해서 왕이 되었지만, 갑자기 숲속나라 밖에서 침범한 그놈의 전염병 때문에 임기 내내 개고생을 했답니다. 특히 온갖 새들이 왕에게 비난과 조롱을 퍼부었지요. 자신들과 같은 종이 아니란 이유로, 평생 풀이나 뜯어 먹던 천박한 땅바닥 출신의 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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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라엔 훌륭한 선지자들도 많지만, 이번 왕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예년보다 더 비호감이라고 난리입니다. 자기 맘에 들지 않거나, 종족이 아니면 모두 시답잖아 보이기 마련이죠. 유력후보 중에서는 사생활이 분란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숲속 먹거리 쟁탈전에서 불법과 편법을 일삼다가 숲속나라 법을 위반했기 때문이죠. 뻔히 나쁜 짓임을 다 알면서도 했으니 말이에요. 중요한 것은 동물의 본능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는 겁니다. 대다수 양심 있는 동물들의 명예에 먹칠한 셈이죠. 숲속나라 왕의 덕목 첫 번째가 바로 양심과 도덕성이란 걸 잊어버렸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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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라 선거 역시 스피커인 참새떼들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참새 스피커들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선거 소식을 전하죠. 특히 왕을 뽑는 선거철엔 더 많은 정보를 이곳저곳으로 퍼 나릅니다. 어떤 스피커 참새는 자기 맘에 드는 후보 소식만 전하고, 또 다른 참새는 비호감 후보에 대해서 가짜뉴스까지 만들어 여기저기 퍼 나릅니다.

물론 참새 스피커 외에도 특정 동물 지지자 중에는 중상모략이란 총질을 서슴지 않는 못된 종자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중도를 표방한 동물 중에서는 누가 왕이 되든 관심이 없거나, 동물의 왕국 자체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부류들도 꽤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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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라 선거를 앞두고, 가장 큰 문제는 숲속 전역에 확산 중인 전염병입니다. 숲속나라 밖에서는 벌써 수천, 수백 만의 동물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거나 다쳤습니다. 이곳 숲속나라도 최악으로 치닫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현재의 왕은 임기 내내 온갖 비방을 다 써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급기야 왕은 숲속나라 밖에서 온갖 약제를 구해와 몰살 위기를 넘겼지만, 설상가상 격으로 숲속나라 밖으로부터 먹거리 전쟁 소식까지 들려옵니다. 그나마 한 형제였던 이웃 숲속나라마저 전쟁무기를 재생산한다는 불안한 소문만 들려 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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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라 동물들은 부족한 동굴 쉼터와 먹거리 부족에 걱정이 큽니다. 새로운 왕이 취임하면 다가올 위기를 잘 극복해주길 원합니다. 아무리 동물이라 해도 자질 검증이 꼭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주류 스피커를 자청한 참새들은 여전히 제 입맛에 맞는 소식들만 전할 뿐, 정작 진실 앞에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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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엔 전염병 퇴치를 위해서는 하루빨리 다 같이 큰소리로 기도하고, 굿판이라도 벌여야 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뒤숭숭합니다. 물론 숲속나라 헌법에도 엄연히 종교와 집회의 자유가 보장돼 있으니까……. 누가 왕이 되든 숲속나라의 법치는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문제는 아직도 우왕좌왕하는 동물들이 많다는 것이죠. 내일 당장 왕을 뽑는 선거가 있다고 해도, 여전히 무관심한 동물들이 많으니 숲속나라에 온전한 평화가 올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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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들의 먹이터는 서로 다르지만, 밤이 되면 모두 숲속 곳곳에 모입니다. 숲속나라는 보이지 않은 거대한 공동체인 셈이지요. 이런 공동체의 평화를 생각하는 동물들은 새로운 왕에게 기대가 큽니다.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숲속나라의 온전한 평화 유지를 위한 지혜로운 왕이 되길 바라는 것이지요. 지금도 숲속나라 밖은 전쟁터나 다름없고, 또 다른 전염병이 몰려온다는 불길한 뉴스가 끊이지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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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나라 안팎에서는 동물의 왕국이 최악의 위기를 맞는다고 외칩니다. 단순한 공포를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 발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명한 동물이라면 숲의 새 왕으로 누가 뽑히든 기대 반 우려 반의 심정일 겁니다. 저나 당신이나, 숲속나라 왕 후보 중 누군가에게 한 표를 던져야 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에게 한 표를 던지는 출마자들보다는 훨씬 더 고민스럽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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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년이란 시간은 동물 세계에선 무척 길지요. 도토리를 줍기 위해 언 땅을 헤매는 다람쥐나 먹이를 찾아 흰 눈밭을 헤매는 작은 새들…. 모두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누가 새로운 왕이 될지 궁금합니다. 어떤 후보를 뽑는 게 최선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를 닮았거나 내가 닮고 싶은 왕을 당당하게 뽑아야 하지 않을까요? 숲속나라, 이 동물의 왕국을 떠나서 혼자 살기 전에는.

그럼, 저와 당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