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신문 | 제프 다이어. 그는 사진 비평가이면서 소설, 에세이, 르포르타주 등의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글을 쓰고 있는 영국의 유명 작가이다. 1958년도에 태어난 저자는 로저 패더러라는 테니스 선수의 말년 무렵 경기를 보며 “끝을 맞이하는 상황,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다. 『라스트 데이즈』는 그가 탐색한 마지막에 대한 사유의 향연이다. 저자는 자신의 은퇴와 스포츠 스타와 예술가들의 은퇴를 비교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 책에 소개되는 이들이 마지막을 대하는 자세는 저마다 다르다. 마지막 순간을 외면하며 직면의 순간을 지연시키는 이가 있는가 하면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도 모른 채 자신을 소모해 버리기도 한다. 저자는 어느 편을 들기보다 그 시간 속에 창작된 예술작품의 면모를 캐낸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모해 가는 화가의 그림이 완성도를 높여가는가, 아니면 화가의 눈에 걸린 질병에 의해 현저히 다르게 표현이 되는가 등을 구체적인 근거와 당대 비평을 추적해 알아보기도 한다. 문학사에 위대한 획을 그었지만 그 때문에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작가의 대한 슬픈 사연도 소개한다. 그러니 『라스트 데이즈』는 저물
용인신문 |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뇌 속에 문제를 지니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있다. 혹은 후천적인 이유로 강박을 가진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이 책은 이같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청소년 중에서도 공황장애로 애쓰는 애덤의 이야기이다. 척 박사의 사무실 13층은 몇몇 청소년이 모여 자신과 주변에서 벌어진 일과 생각을 나눈다. 이주 애덤은 닉네임이 베트멘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고요한 마음을 갖는 것이지만 ㄱ러려면 몇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한다. 그는 정화의식 없이 문턱을 넘을 수 있어야 한다. 이혼한 엄마의 저장 강박에 협박 편지에 대한 비밀도 지켜야 하고, 아빠와 엄마의 집을 오가야 하기도 한다. 애덤은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이라 생각하기에 정화의식을 한다. 최근 척의 사무실에 새로 등장한 로빈을 좋아하게 된 후,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점점 회복되는 로빈에 비해 자신의 상태는 점점 엉망이 되어 속상하기만 하다. 애덤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애덤에서 의사 척은 말한다. “슈퍼히어로들은 가끔 다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준단다. 다들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있는데도 말이지.”(303쪽) 또 곤경에 처한 애덤에게 앞집 폴란스키 부인은
용인신문 | 디아스포라 라는 말은 대체로 슬픈 이유로 자신의 터전을 떠난 민족들의 모습을 말한다. 유대인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전 세계로 흩어졌던 사례가 그 시작이라면 오늘날은 분쟁이나 기후변화로 인한 기아 등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금이가 쓴 소설 『거기, 내가 가면 안 돼요?』와 『알로하, 나의 엄마들』, 『슬픔의 틈새』는 일제강점기에 우리 땅을 떠난 소녀들의 이야기이다. 이중 얼마 전 발간된 『슬픔의 틈새』는 사할린으로 떠난 소녀 단옥네의 이야기이다. 단옥의 고향은 충남 공주였다. 단옥이 건너온 곳은 화태. 그곳은 러시아가 사할린이라고 불렀으나 1905년 일본이 전쟁에 승리해서 차지한 후 ‘가라후토’라고 불렀으며 조선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적은 한자를 읽어내 ‘화태’라 했다. 그곳은 아버지가 탄광노동자로 와서 온갖 고생을 하며 지내는 곳이기도 했다. 소설의 전반부, 단옥네 가족은 화태에 모여 한 때 행복을 찾는 듯했지만 아버지가 다시 다른 곳으로 노동을 위한 강제로 이주를 하는 통에 그 꿈은 무산된다. 단옥의 여정은 거대한 강제이주와 노역의 역사를 따라가는 로드무비와 같다. 여정에서 만나는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땅을 잃고 정처없이 떠도는 아픈 이들이다
용인신문 | 박물지는 백과사전을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전은 기호의 순서에 의해 정보를 나열하지만 백과사전은 기호를 계열별로 나눠 나름의 체계와 세계관을 품고 출간된다. 플로니우스가 출간한 박물지는 서기 100년 이전에 출간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동물지> 이후 세계 최초의 백과사전이다. 이 사전에는 자연사뿐만 아니라 “인간과 관련된 인문학에 대한 정보와 민족의 역사를 이야기 형식으로 엮어”냈다. 물론 어떤 정보는 들은 이야기를 적기도 했지만 그가 남긴 저술은 아직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소개된 환상적인 동물들은 게임이나 판타지에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노마드에서 번역 출간한 『폴리니우스 박물지』는 가이우스 클리니우스 세쿤두스가 원작자이고 존 S. 화이트가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게 엮은 책이다. 백과사전의 일부를 살펴보면 금화를 인간의 행복을 저해한 물건으로 소개한 것이 흥미롭다. 주조한 사람도 인식하지 못했다는 기록을 통해 돈이 가진 편리함 뒤에 숨은 부정적인 면모를 일찍부터 인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은에 대한 설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면, 은이 일상에 쓰는 거울이 되었을 때는 감탄을 드러낸다. 뒤이어 일상
용인신문 | 엽편소설은 단편소설보다 짧게 쓴다. 엽편소설은 ‘소설의 위기’라는 시대에 맞서 독자도 창작자도 빠르게 대처하는 한 방편이라 볼 수 있다. 1900년대 초기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엽편소설은 다시 출간되고 있다. 올해 초 출간된 이진하의 『설명충 박멸기』에 수록된 소설들은 허구와 진실을 오가며 삶의 실체를 파헤친다. 표제작 「설명충 박멸기」는 설명충 때문에 질병에 걸린 인물을 통해 현대인의 우울을 경쾌하게 담아냈다. 현대인은 할 말을 못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너무 많이 해서 혹은 해야 할 말을 하지 않아서 우울에 잠긴다. 작품은 이들이 설명충에 감염되었다는 상상을 한다. 이들의 질병이 어떻게 나을 것인가 살피는 것이 이 소설의 결말이다. 플라잉이라는 말의 유행 속에 땅에 발붙이고 살지 못하는 아이들은 결국 우주로 날아갔을까?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은 짧지만 단단하게 사람들을 붙잡아주는 제도나 멘토가 부재한 우리 현실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이야기 속에서 고용자도 노동자도 설 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천국은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일까? 이야기가 우리 시대에 투척하는 아이러니는 서글프다. 언제까지 우리는 “아름답고 빛나는 곳에서
용인신문 |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그의 저서에서 현대인이 고독을 잃어버린 것은 위기라고 주장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기술이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로젠의 『경험의 멸종』도 같은 맥락에서 기술의 발달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멸종시킨다고 말한다. 새로운 기술은 그 편리성 때문에 잃는 것이 고려되지 않은 채 놀라운 속도로 진보하고 있다. 문제는 “육체의 중요성, 물리적 공간의 완전성, 내면의 삶을 가꿔야 하는 필요성” 등이 간과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사람의 경험을 소비하는 데 쓰느라 “육체 없이 경험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중요한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이어간다. 뿐만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오는 기다림의 미덕뿐 아니라 욕구를 지연시키는 힘조차 잃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기술은 기업에 의해 주도되며 그에 따라 기술이 개인을 소모시키고 있지만, 개인은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독자에게 사랑하는 이와의 대화가, 순간의 기억을 담은 사진이, 나의 고독조차 소셜미디어에 게시되어 그곳을 지배하는 대기업이 소유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