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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와 환향녀 그리고 종군위안부에 국가는 사과 했었나’

역사는 미래다 ③

병자호란 때 청국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성들이 수없이 자살했다. 이들은 목을 매 죽거나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얼마나 포로로 끌려갔는지 모를 정도로 많은 이 땅의 여인네들이 포로로 끌려갔다(대략15~30만명)가 귀환한 2만 5000여명 중 상당수가 자살했거나 자살을 시도했다.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이들은 고향사람들의 경멸과 가족의 비난을 견딜 수 없었다.

조선 땅엔 전쟁이 끝나고 나면 으레 여성들의 자살이 뒤따랐다. 임진왜란 때 왜군의 현지처 노릇으로 목숨을 부지한 여성들, 병자호란 후 살아 돌아온 여성들에게는 자살이 강요됐다.

돌아온 여성들에게는 환향녀((還鄕女)란 이름표가 붙었다. 이 말은 '화냥년'이란 말로 변하면서 '정절을 지키지 못한 여자'란 의미가 덧붙었다.

여성들은 이른바 남성 중심의 가문과 정절의 이름으로 처단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여성의 정조를 사회문제로 대두시켰다.

'열녀 이데올로기'에 숨은 폭력성의 절정은 자신들의 잘못을 엉뚱한 것으로 몰아가려는 왕조와 사대부들의 파렴치였다. 백성을 지키지 못한 왕조와 집권 사대부는 엎드려 사죄했어야 했다.

왕조와 사대부들은 사죄는 커녕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며 자살을 방조하고 심지어 끊임없이 강요했다.

는 사회적 타살에 다름 아니다. 집권층의 이 같은 태도는 책임 회피이며 권력을 지키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어버이가 잘못했다고 한들 어버이를 바꿀 수 없으며 원망할 수도 없다'는 식이다. 왕조는 이른바 '효의 논리'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삼고 그 뒤에 숨어 남 탓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배층의 약삭빠른 태도와 함께 왜곡된 가족주의도 반성해야 한다.

이 광기어린 조선판 마녀재판, 인민재판의 환향녀 논란에 대해 조선의 임금들이 내린 조치는 전국적으로 회절강(回節江)을 지정한 것 뿐이다.

병자호란 발발 최대의 주범인 인조는 '도성과 경기도 일원은 한강, 강원도는 소양강, 경상도는 낙동강, 충청도는 금강, 전라도는 영산강, 황해도는 예성강, 평안도는 대동강을 각각 회절강으로 삼는다. 환향녀들은 회절하는 정성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라.

몸을 씻는 것으로 모든 죄는 사라진다. 만일 회절한 환향녀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례가 있으면 국법으로 다스리겠다'고 밝혔다.

환향녀에 대한 <인조실록>중에 사관은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덧붙여 놓았다.‘사신은 논한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으니, 이는 절의가 국가에 관계되고 우주의 동량이 되기 때문이다.

사로잡혀 갔던 부녀들은, 비록 그녀들의 본심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변을 만나 죽지 않았으니, 절의를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절개를 잃었으면 남편의 집과는 의리가 이미 끊어진 것이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는 것이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씻는다고 다시 깨끗해 진다는 논리도 어리석지만, 나라를 지키지 못한 임금이 '회절하는 정성 운운'하는 것도 염치없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족조차 지켜주지 못한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이 그 모든 책임을 백성들 탓으로 돌리는 비겁함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졸렬함을, 거북함을, 아니면 불쌍한 시대의 탓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은 아닌가?

주권을 빼앗긴 암울한 시대에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삶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아온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주권국가 대한민국은 대체 무엇을 해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열녀로, 투사로 인정받으려는 것이 아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 온 우리의 어머니 이며, 누이 이며, 고향에서 살고 싶었던 소박한 꿈을 가진 가녀린 여인들에게 우리가 대답할 차례이다. 남아있는 시간은 촉박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