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 맑음동두천 22.1℃
  • 맑음강릉 17.8℃
  • 맑음서울 23.5℃
  • 맑음대전 24.7℃
  • 맑음대구 29.3℃
  • 맑음울산 21.8℃
  • 맑음광주 24.1℃
  • 맑음부산 20.3℃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1.4℃
  • 구름조금강화 19.4℃
  • 맑음보은 24.9℃
  • 맑음금산 23.4℃
  • 맑음강진군 24.4℃
  • 맑음경주시 22.6℃
  • 맑음거제 23.8℃
기상청 제공

"시급한 청소년 흡연의 발칙한 상상"

한여름 뙤약볕 아래 담배 밭고랑에서의 작업은 학생들에게 피하고 싶은 작업 중의 하나였다. 대학시절 농촌봉사 활동을 여러 번 경험한 필자에게도 독한 담뱃진과 땀방울이 범벅된 담배잎 따기는 힘든 노동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수확의 고단함이 있지만 수입의 만족도가 크기 때문에 농촌의 효자 작물로 널리 재배된 담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하면 아주 오래된 옛날 같지만 임진왜란 이후 일본을 통해서 전래된 것이므로 생각만큼 옛날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어른 앞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풍습은 언제쯤 정해진 것일까?

18세기 조선의 세시풍속이 기록된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비천한자는 존귀한 분 앞에서 감히 담배를 피우지 못한다’ 고 되어있다. 또 ‘거리에서 함부로 담배를 피우거나 높은 관리가 행차할 때 피우면 엄한 치죄를 받는다’고 되어있다.

기록으로 볼 때 이러한 풍습들은 전래 직후부터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예절의 유래를 보면 조정에서 어전회의를 할 때 신하들이 담배를 피우는데 연기가 높은곳으로 올라가 임금에게로 가는 바람에 금지 시켰다는 것과 담뱃불씨로 인해 곤룡포가 타게 돼서 임금앞에서 피우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담배가 들어와 확산되던 시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과 같은 전대미문의 전쟁을 겪은 조선에서 급격한 신분제의 동요에 따른 사회질서가 급격히 와해되던 혼란기였다.

붕당의 독점체제를 강화하던 서인정권은 북벌론을 주장하더니 급기야는 예송논쟁을 일으켜 소중화 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궁궐의 예법을 확정한 양반사대부들에게 남녀노소가 즐겨 피던 담배문제에 대한 위아래 순서를 정한 것은 당연한 순서 였으리라.

어른 앞에서, 윗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아무나 필 수 없어진 담배를 양반 사대부들은 담뱃대와 담배합에 멋을 부리기 시작했다. 담뱃대는 오동(烏銅)으로 만들어 금·은으로 치장하고, 담배합에는 매화·대나무 등 화려한 문양을 은으로 새겨 넣기도 한다. 신윤복의 풍속화에 사람의 앉은키보다 훨씬 긴 담뱃대를 물고 있는 사대부와 그보다 짧은 담뱃대를 문 기생의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은 당시 유행의 반영인 것이다.

이미 멸망한 명을 대신 한다는 소중화 사상에 사로잡힌 양반들에게 담배 피는 것조차도 질서를 위한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사대의 실체가 사라졌지만 주체의 입장으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의 지배층들에게 사대의 대상이 구체적인 생활규범에 대한 통제와 간섭 정책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담배는 국가의 수입을 증대시키기 위한 흡연운동과 국민의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 금연운동 중에서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을까?

오늘도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을 피해 흡연하는 이유가 호랑이 담배피던 조선후기에 있었던, 윗전 앞에서 담배를 피지 못하게 한 국가차원의 홍보(?)때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지라도..

어찌하랴, 발칙하게 상상해 보자. 이제라도 담배 피는 것에는 위·아래 없다고 정부가 나서서 공익광고라도 찍는다면 10대 흡연율이 줄어들지도 모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