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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김치의 원조 국가는 어디인가?

“오늘, 우리가 먹는 김치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졌다”

미련 곰탱이와 까칠한 호랑이가 쑥과 마늘을 100일 동안 먹겠다고 환웅을 찾아온다. 경쟁자인 호랑이가 사라진 상태에서도 곰은 21일을 먹고서 여자의 몸으로 변한다. 13세기 일연 스님의 <삼국유사>에 등장한 마늘의 효능은 경이로울 뿐이다. 그래서일까 현재에도 마늘은 건강을 위해 매우 소중한 밥상의 찬거리다.

마늘과 함께 있는 고추는 어떠한가. 16세기 중반에 포르투갈인이 일본에 전래한 것으로 알려진 고추는 1592년 임진왜란 중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고추를 왜겨자라고 쓰고 있다.

TV에서 김치냉장고를 광고하는 모델들이 ‘아삭’ 하고 맛있게 먹는 빨간 김치의 역사는 17세기에 시작된 것일까? 빨간 김치는 아니지만 하얀 김치는 고려의 이규보가 남긴 <동국이상국집>에 염지(鹽漬)라고 표기한 것으로 볼 때 예전부터 먹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 초반에 ‘딤채’라는 말이 등장하는데 구개음화 현상으로 김채로 변하여 발음하기 좋은 ‘김치’로 불려졌을 것이다. 김치의 어원이 소금에 절인 채소의 의미로 본다면 17세기 이전에 한반도에 살았던 선조들은 싱싱한 김치보다는 푹 절여진 김치를 먹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배추를 소금에 절여서 먹었을까? 저장 기술이 없던 시기에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소금에 절여 두는 것이었다. 또한 소금을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은 김치를 절여서 먹음으로써 해결 할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추론하자면 정착 생활이후 발생한 계급사회의 출현과 국가의 탄생 과정에서 지배층의 필수 식량(?)으로 김치는 인기있는 먹거리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문헌상의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김치에 관련된 자료가 없다.

이렇다 보니 오늘날 중국과 일본에서 김치의 원조를 주장하는 것이다. 김치를 담그는 과정들이 문헌으로 전해져 오는 중국과 일본의 주장을 억지라고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쌀가루와 소금, 채소를 이용하여 김치를 담갔다는 양국의 기록들을 통해서 삼국시대에 우리도 그와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문헌에서 김치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이 등장하는 고려시대에 와서야 무장아찌, 소금에 절인 순무 등 여러 종류의 김치가 등장하고, 마늘과 생강 등의 양념을 사용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더욱 다양하게 오이, 가지, 고사리 등이 등장한 것으로 볼 때 소금에 절인 것과 발효시킨 김치도 나타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압도하는 김치는 빨간 김치, 즉 고추의 등장이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오늘날 우리가 먹는 김치의 원형이 만들어져서 총각김치, 오이소박이, 오이지, 가지김치 등의 다양한 김치가 개발된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인류학자인 프랑스의 레비스트로스는 “음식을 구워 먹는 요리법보다 발효시켜 먹는 요리법이 훨씬 진보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양의 음식들이 단순하게 불에 익히거나 구워먹는 방법밖에 모르던 시절에 우리들은 다양한 양념을 첨가한 발효 김치를 담그지 않았던가.

과정의 복잡함 보다는, 담그는 이들의 손맛에 따라 다양한 맛을 보여주는 김치에 대해 원조를 따지는 것만큼, 맛과 질의 우수함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중·일 간의 역사에서 공유성 보다는 갈등과 오해, 불신과 왜곡의 역사가 훨씬 많다면 김치와 관련된 공통의 역사를 만들어 공정한 품질의 경쟁을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