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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에 대한 오만가지 상상’

처용(處容)이 주는 친근함을 가진 세대들이 영어에 덜 노출됐다면 무슨 얼토당토 않는 말이냐고 할지 모르겠다. 언어와 비문학으로 국어를 나누어 시험보는 현행 입시제도에서 <처용가>를 배우는 학생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에 유난스럽게 고전문학을 좋아했다. 마음껏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의 여백을 혼자 즐길 수 있었던 이유 때문이다. <처용가>를 배우던 날, 자신의 아내와 몰래 잠자리를 하고 있는 외간 남자를 용서하는 내용에 대해 ‘미친거 아닌가요’라고 말했다가 선생님으로부터 <삼국유사>에 나오는 향가 14수를 다 외우라던 벌을 달게(?) 받기도 했으니….

그렇다면 한번 상상력을 발휘해서 처용이 살았던 9세기 말 신라로 가보자. 헌강왕이 동해안 개운포(지금의 울산 부근)에 놀러 갔다가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길을 잃었는데, 일관(점을 치는 관리)의 말인즉, “동해바다 용의 훼방이니 좋은 일로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근처에 절을 짓고 복을 빌라는 명령을 내리자 즉시 구름과 안개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동해 바다 용이 기뻐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놀다가 그 중 한명이 왕을 따라 경주에 와서 급간의 벼슬을 받았다. 왕이 미녀를 아내로 맞게 해주었는데, 아름다움을 탐낸 역신(疫神:질병을 옮기는 귀신)이 사람으로 변하여 아내를 유혹(?)한 것일까?

동경 밝은 달에 밤새 놀며 다니다가/ 집에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랑이가 넷이어라/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고/ 본디 내 것이지만 빼앗겼음을 어이할 꼬

노래를 들은 역신이 너그러움에 감격하여 엎드려 빌면서 “앞으로 당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하니 그 뒤에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문에다 붙였다.

이제부터 다시 처용이 등장한 신라말기의 상황에 따른 이야기를 재해석 해보련다. 지방 호족 세력의 성장을 견제하고자 하는 왕실의 노력이 결혼을 매개로 하여 호족을 포섭하고자 했으나 실패한 것은 아닐까. 설화적 요소는 어떤 역사적 실재를 간접적으로 상징한다. 동해바다의 용은 지방 세력의 성장이며, 왕은 호족의 견제를 위해 아들을 인질로 불러들인 것이다. 이미 퇴폐한 도시 경주를 상징하는 역신을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보는 처용은 지방 세력이지만, 아직은 경주의 진골 귀족을 제압하기에 힘이 부족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헌강왕 시절의 경주는 초가집이 없고 숯으로 밥을 해 먹어서 연기가 나지 않았다는 기록을 보면 폭풍전야의 신라 운명을 보는 듯 하다.

한편 일부에서는 처용에 대해 아라비아인으로 보기도 한다. 9세기에 이슬람 문헌에 신라에 대한 언급을 보면‘신라라는 나라에 간 무슬림들은 좋은 환경에 매료되어 영구정착해 버린다’고 나와 있다. 경주에 괘릉(원성왕릉)의 무인석은 한국인의 모습과는 다르게 우람한 체격에 높은 코와 파마한것 같은 머리와 수염이 묘사되어 있다.

처용이 경주에 나타난 지방호족 세력 또는 아라비아 상인이라는 의미가 주는 것은 설화가 주는 의미의 해석에 따른 당시 신라사회의 실제 모습이다. 지방세력을 경계하는 진골귀족이 결국 목숨을 구걸하여 후일을 기약하고 있거나, 화려하고 사치로운 향략 생활을 즐기면서도 불안해하던 귀족들의 모습을 백성들은 즐기며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배고픔에 신음하던 신라의 백성들은 처용과 같은 새로운 세력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금만을 빼앗아 가는 중앙 진골세력에 저항의 의미로 팥죽을 끓인 것은 아닐까?


오룡(오룡 아카데미 원장, 용인 여성 회관, 강남대 평생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