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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79 l 물속의 방 l 송재학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79

물속의 방

송재학

저수지마다 물의 방이 있지는 않지만, 내 왼쪽 저수지는 고요했기에 매년 사람이 빠졌다 물의 낭떠러지에 물의 방이 있어야만 했다 얼음장이 움푹 꺼질 때의 탄식만을 본다면 물의 방은 수심이 그은 금의 내부이다 언젠가 얼어버릴 물의 시퍼런 능선이 가시를 내밀었던 자국까지이다 물의 뼈는 수은 같은 금속이라 단단하고 자유롭다 그러니까 물고기는 물과 수은을 닮아 푸른 등뼈를 만들었다 물의 방에도 비늘과 아가미가 있어 물고기와 비슷하다 물풀처럼 일렁이는 이야기는 부레 없이 지느러미 각주를 달고 물의 시렁에 뼈만 추스려 얹었다 가끔 죽은 뼈가 닿으면 물의 속눈썹부터 손사래를 쳤다 내 안에 부릅뜬 사람이 있듯 물의 어두운 곳에 물의 영혼이 있다 물의 침전물이 고스란히 간직되듯 내 안의 사람은 다시 나를 느낀다 수면의 악다구니와 달리 물의 방은 어제 가위 눌린 눈물이 필사되는 곳이다 물이 일일이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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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시인이 들려주는 ‘물속의 방’. 모든 “저수지마다 물의 방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의 방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문득문득 “얼음장이 움푹 꺼질 때의 탄식만을 본다면 물의 방은 수심이 그은 금의 내부”가 되겠지요. 기록되지 않은 삶은 “물풀처럼 일렁이는 이야기”로 변하고, 그것은 “부레 없이 지느러미 각주를 달고 물의 시렁”에 자리합니다. 만약 “물의 어두운 곳에 물의 영혼이 있”다면 우리의 가장 어두운 곳에 우리의 영혼이 있는 것이겠지요. 가까스로 이어가는 “수면의 악다구니와 달리 물의 방은 어제 가위 눌린 눈물이 필사되는 곳”. 그렇기에 “물이 일일이 울고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습니다. 어쩌면 일일이 우는 것은, 물의 몫이며 운명일 것. 결국 꽃도 햇빛도 우리도 “물 아래를 꿈꾸는” 존재들 입니다. 이처럼 ‘물속의 방’은 끊임없이 “아래를 꿈꾸는” 한 존재의 내밀한 방. 그 내밀한 방에 초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름, 당신.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