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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82 l 나의 아름다운 방 l 신영배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2


나의 아름다운 방

신영배



오후 두 시 방향으로
나는 상자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얇게 접어둔 다리

의자는 새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앉아 있던 잠이 툭 떨어져 내린다
의자가 쓰러지고
새가 아름답게 나는 방

오후 네 시 방향으로
나는 물병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흠뻑 젖은 주둥이로 다리를 조금 흘린다
관 뚜껑을 적시는 문장

화분은 고양이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깨진 고양이가 내 손등을 할퀸다
씨앗이 퍼진다
갈라진 손등에 고양이를 묻고
해 질 녘 손의 음송

오후 여섯 시 방향으로
나는 기다란 악기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붉은 손가락으로 관 속의 다리를 연주한다

커튼은 물고기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젖히자 출렁이는 강물 속
내 다리가 아름답게 흐르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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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방’에 관한 이야기. 이 작품에서의 방은 마지막 연에서 볼 수 있듯이 “출렁이는 강물 속/내 다리가 아름답게 흐르는” 공간입니다. 이를 소급적으로 적용해서 시적 주체인 ‘나’의 정체성에 관해 알아볼까요. ‘나’는 세상의 모든 그림자를 가지고 있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상자의 그림자, 물병의 그림자, 기다란 악기의 그림자가 모두 ‘나’의 것이지요. 이렇게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로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그림자의 이행은 그 자체로 한 곡의 음악, 여기서 떠오르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시 속의 자유는 자유롭지 못함을 담보로 하는, 또는 전제로 하는 자유로움일까요. 아니면 자유를 넘어서는 자유일까요. 어쩌면 ‘나의 아름다운 방’은 ‘나의 기이한, 아름다운 방’인지도 모릅니다. ‘기이하고 아름다운, 아름답고 기이한 방’ 말이지요. 도처에 “관 뚜껑을 적시는 문장”들이 흐르는 방이므로. 과연 이러한 문장은 얼마나 깊은 어둠으로 물들어 있을까, 끝내 물들게 될까.



이은규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