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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88 I 나의 매화초옥도 I 조용미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88

나의 매화초옥도

조용미


눈 덮인 산, 무거운 회색빛 하늘, 초옥에서 창을 열어두고 피리를 불며 앉아 있는 선비의 시선은 먼데 창밖을 향하고 있다

어둑한 개울에 놓인 다리를 밟고 건너오는 사내는 어깨에 거문고를 메고 있다

멀리서 산속에 있는 벗을 찾아오고 있다 방 안의 선비는 녹의를 그는 홍의를 입고 있다

초옥을 에워싸고 매화는 눈송이가 내려앉듯 환하고 아늑하다

매화를 찾아, 마음으로 친히 지내는 벗을 찾아 봄이 오기 전의 산중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생겨나고, 부유하고, 바람의 기운 따라 천지간을 운행하는 별처럼 저 점점이 떠 있는 흰 매화에서

우주의 어느 한 순간이 멈추어버린 것을, 거문고를 메고 가는 한 사내를 통해 내가 보았다면

눈 덮인 산은 광막하고 골짜기는 유현하여 그 속에 든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아득하구나

천리 밖 은은하게 번지는 서늘한 향을 듣는 이는 오직 그대뿐

밤하늘의 성성한 별들이 지듯 매화가 한 잎 한 잎 흩어지는 봄밤, 천지간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나는 그림 속 사람이 된다 별빛이 멀리서 오듯 암향도 가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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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하 수상해도 상춘객의 마음은 온통 매화를 향해 있겠지요. 만약 아직 꽃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면, 입김이라도 불어넣고 싶은 심정일 것 같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 시 속에 등장하는 ‘매화초옥도’는 화가 전기의 그림이지요. 문득 ‘마음으로 친한 벗’을 떠올려 봅니다. 멀리 있어도 가까운 그 이름을 말이지요. 설경도 좋고 꽃도 좋습니다만, 우리의 눈은 어느새 다음 구절에 가닿습니다. “사람의 일은 참으로 아득하구나”. 눈 밝은 철학자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봉오리 터지듯 끝내 터져 나오는, 탄식의 말이 있다면 그건 ‘아득하다는 말’이겠지요. 참으로 다행인 것은 ‘서늘한 향을 듣는 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서늘한 향’은 안으로 숨어드는 말과 같은 것이겠지요. 아직 전하지 못한 마음 대신, 한 수 전하는 매화 문장!

이은규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