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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96ㅣ분홍 나막신 ㅣ송찬호

용인신문 시로 쓰는 편지 96


분홍 나막신

송찬호




님께서 새 나막신을 사 오셨다
나는 아이 좋아라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와 복숭아뼈를 깎고
새 신에 발을 꼬옥 맞추었다

그리고 나는 짓찧어진
맨드라미 즙을
나막신 코에 문질렀다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와도
이 춤을 멈출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님께서는 오직 사랑만을 발명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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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분홍과 가까운 분홍 사이를 서성이는 봄날입니다. 그대에게 선물 받은 신발이라니, 발걸음마다 꽃이 피어나는 느낌이겠지요. 걷는 동안 꽃의 목소리가 귓가에 아득하겠지요. 내 발에 맞는 신발을 찾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신발에 내 발을 맞추는 일. 저만치 피어있는 맨드라미의 꽃말은 열정. “발이 부르트고 피가 배어 나”오도록 마음을 다 하는 것은 열정입니까, 열정이 아닙니까.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사랑예찬』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어떤 경우든 선언을 위한 전제 조건은 용기일 것. 자신 스스로에게 외치고 세상에 외치는 법이니까. 이어서 철학자는 힘주어 적고 있습니다. “최초에 선언된 바로 그 사랑도, 역시 다시 선언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이지요. 춤을 계속 추겠다는 의지, 멈추겠다는 의지가 꽃그늘 너머로 일렁입니다. 늦봄, 사랑만을 발명한 사람의 이름이 맴도는 입술.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