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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시인의 시로 쓰는 편지 101ㅣ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ㅣ최서진

 

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

 

최서진

 

성실하게 자라는 아몬드 나무의 가지 끝에서

아몬드를 기다린다. 밤에도 열매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열매를 기다리는 꽃이 완성된다

 

꽃과 죽음은 함께 다가오는 것

발설하기에는 위험하지만

숨을 크게 내쉬면 꽃의 반대편에서 아몬드 냄새가 난다

 

이국의 어느 화실에서

늙은 남자가 꽃피는 아몬드 나무* 를 그린다

 

항상 봄도 아닌데 너무 많은 꽃, 방을 지나 바다로

 

꽃잎이

바다와 바닥에 한꺼번에 쏟아진다

물속에서 나는, 천사들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 풍경은 홀린 듯 누가 다녀간 세계

 

눈이 파란 빈센트에게 주는 활짝 핀 희망 그리고 위로,

꽃과 푸른 시간이 만나 만들어 내는 세계

 

나는 아몬드 나무

오래된 외로움을 접어

잡지 못한 수많은 꽃잎을 날려 보낼 때

한쪽의 벽면을 채우는 그림이 완성 될 때

 

모두가 갑자기 하늘을 나는 코끼리처럼 가벼워질 때

벽을 완성하면서

벽을 질문을 눈치 채지 못하기로 한다

나는 벽 쪽으로 무너진다

 

아몬드 나무는 아몬드가 되고

 

 

*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고요한 파격의 시적 세계를 추구하는 시인의 첫 시집 표제작 입니다. 시인에게 첫 시집은 세상을 향한 시적 선언. 시인의 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지요. “음악과 심장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물고기가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새처럼 멀어지고 떨어지는 생각들 지도에 없는 별을 그려 넣고 이른 아침 신발을 머리에 신고 사람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했다”. 풍경과 기억을 오래도록 생각한 시인. 그것은 풍경과 기억이 시가 되는 이치, 그리고 아몬드 나무가 아몬드가 되는 이치와 닿아있겠지요. 시집 해설에서 박성준 평론가는 사유와 몸, 나와 우리, 이미지와 관념 그 사이에서 시가 빛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그 사이란 근본-기분을 형성할 수 없는 불연속적인 현실 사태와 시적 자아가 조우하는 데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하고 있지요. 시인이여, 시간이여, 아몬드 꽃이여 피어라, 그 어떤 존재보다 활짝.

 

 

이은규 시인 yudite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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