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누스 푸티카
박연준
옛날, 옛날, 옛날
(뭐든지 세번을 부르면, 내 앞에 와 있는 느낌)
어둠을 반으로 가르면
그게 내 일곱살 때 음부 모양
정확하고 아름다운 반달이 양쪽에 기대어 있고
아무도 들어오려 하지 않았지
아름다운 틈이었으니까
(........)
어느 여름 옥상에서 어떤 감정을 알게 됐는데
떠난 사람들의 길고 축축한, 잠옷이
펄럭이는 걸 보았지
사랑이 길어져 극단까지 밀고 가다
견디지 못하면
지구 밖으로 밀려나는구나
피가 솟구치다 한꺼번에
증발하는구나
후에 책상 위에서 하는 몽정이 시,라고 생각햇다가
나중엔 그의 얼굴을 감싼 채 그늘로 밀려나는 게
사랑, 이라고 믿었지만
일곱 살 옥상에서 본 펄럭이는 잠옷만큼은
무엇도 더 슬프지 않았다고
그때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모든 면에서 가난해졌다
박연준은 주술적인 모티브를 통해서 베누스 푸티카(정숙한 여자)의 세계로 들어간다. 어둠을 반으로 가르면 그곳에 한낮이 있어야 하지만 일곱 살의 음부와 아름다운 반달과 아무도 들어오려하지 않는 아름다운 틈이 있을 뿐, 정숙은 일곱 살의 비너스의 초상이다. 옥상에서 본 것은 죽음의 실체다. 떠난 사람의 길고 축축한 잠옷은 죽은 자에 대한 은유다. 피가 한꺼번에 증발하는 것 같은 멀티 오르가니즘의 황홀경은 사랑의 체험이지만 그늘로 밀려나는 것 또한 사랑이라는 걸 알고 나서 사람들은 본격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