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돈을 굽다
이 원 오
동네 어귀 신돈 연탄구이 가게는 성황이다
주인은 적당히 익힌 초벌구이 고기를 내온다
통통한 두께가 입맛을 돋운다
쫀득한 비계는 유혹적이다
탐욕스런 기름이 뚝뚝 떨어진다
중독된 가스만큼의 혀를 마취시킨다
껍질의 검게 탄 부분은
상처가 된 마음의 일부이다
연탄불은 금방이라도 베일 듯이 파란 검이다
검은 신돈을 베었고 민초를 위한 마음도
함께 베었다
검의 용도는 고기를 자르는 데 있는데
신돈에게는 그의 목을 치는데 용도가 있었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고고해진다는
어느 종파의 습속은 통하지 않는다
잘 씹히는 고기는 언제든지 회자된다
신돈을 요승으로 만든 역사서가 잘게 씹히고 있다
신돈이 슬프게 웃고 있다
이원오의 첫시집 『시간의 유배』는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해석하고 그 해석 위에 시인의 상상력과 서정을 단호하고 유려하게 입힌다. 정사가 시인을 만나 어떻게 오류의 그늘을 벗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그의 시는 유쾌하고 경이롭고 신비롭다. 그러면서도 가볍지 않고 둔중하다. 그의 이번 시집이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다른 시집들과 구별되어야 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시인이 새로운 지점에 자신의 시세계를 펼치기 위해 얼마나 고투했는지를 느끼게 한다. 「신돈을 굽다」역시 그의 이러한 작의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연탄불에 돼지고기를 굽는 가게의 풍경은 아직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뒷골목 허름한 가게의 현실적인 풍경이다. 연탄가스에 중독되는지도 모르면서 고기를 굽고 소주를 마시고 하루의 잡다한 일들을 떠올리며 담소를 나누고 거나해지면 유행가 한 자락을 펼칠 수 있는 떠들썩하고 매케하고 유쾌한, 그러나 우울하고 적막하고 외로울 수도 있는 공간에서 시인은 돼지고기를 모티프로 신돈을 불러온다. 돼지라는 의미의 돈(豚)과 신돈의 돈(旽)은 음이 같을뿐 의미는 다르지만 그의 상상력 속에서 두 돈은 등가인 사물이거나 인물이다. 연탄불은 파란 검이어서‘신돈을 베었고 민초를 위한 마음도 함께 베어졌다’고 노래한다. 역사의 오류를 바로잡는 문장이다. 신돈이 슬프게 웃는 것은 그의 신원이 완성되었다는 의미다. 김윤배/시인<용인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