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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문화예술인

인간의 끝없는 탐욕… 코로나 등 대재앙 경고

용인의 문화예술인 11. 이상권 작가

 

[용인신문]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대 혼란에 빠져든 오늘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하는 작가가 있다.

 

이상권. 그는 자연과 동물, 그리고 환경을 이야기 해온 우리나라 최고의 생태작가다.

 

마침 지난달에 출간된 청소년 소설 ‘신 호모데우스전’에서 이상권 작가는 코로나19를 예견이라도 했듯 동물실험의 잔학성과 인간 중심적 사고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코로나19 발생 전에 원고를 마쳤던 이 책에는 이미 현재와 똑같은 상황이 묘사돼 있었지만 출판 과정에서 지워냈을 정도다.

 

신과 인간, 과학과 철학 같은 인문학의 근원을 파고드는 치열한 탐구와 성찰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있는 이상권 작가. 그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 속에서 터져 나오는 핵전쟁, 코로나19와 같은 대재앙의 모습의 끝을 이미 예견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상권 작가는 광교산 자락인 수지구 고기동에서도 깊고 깊은 산골짜기에 묻혀 살고 있다.

 

자연 깊숙이에서 자연을 그대로 보고 느끼면서 사는 측면도 있지만 무참하게 훼손돼 가는 자연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목도하기도 한다.

 

그가 고기동에 자리 잡던 14년 전만 해도 반딧불이가 엄청 많았지만 요즘은 살고 있는 집에서도 더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야만 볼 수 있을 정도로 개발이 진행됐다.

 

“이런거 하나도 보존 못하는…”

 

서울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산 밑에 살던 이상권 작가는 작가로서 가장 화려하던 절정기에 각종 회의감이 밀려들면서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용인으로 내려왔다.

 

아이의 교육문제를 핑계 삼아 미련 없이 서울을 떠나온 그는 별 기대도 없던 용인의 산이 강원도보다도 더 깊어 놀랐다.

 

최고의 생태작가 지난달 청소년 소설 출간
‘신 호모데우스전’ 동물실험의 잔학성 고발
용인 내려와 동화·소설 선넘은 창작활동

 

작가로서 서울을 떠난다는 것은 대중성에서 멀어지는 것을 의미했고, 곧 은둔 작가라는 별명도 생겼지만 용인에 와서 작가로서 더 깊어지고 커졌다.

 

“서울에서는 단순하게 생태나 우리나라에서 낮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글을 썼다면 용인에서는 문학적으로 쓰고자 하는 담론이 더 커졌습니다. 문학을 하러 제대로 왔구나. 숱한 과학자나 철학자의 고민을 이젠 알겠더라구요. 왜 그 시절에 치열하게 신과 인간을 고민했는지.”

 

그는 가장 근원적인 고민에 빠져들었다. 브레이크가 없는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십만 달러를 넘어가면 행복할까요. 인간이 이백살 산다고 행복할까요. 욕망은 점점 더 커지겠죠. 그런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무섭고 끔직한 것인가. 제동을 걸기는 어려울 거에요.”

 

그는 올해 핵문제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했다. 한반도에서 미국이 쏘고, 북한이 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하는.

 

이상권 작가는 동화작가, 청소년 작가로 불리고 있지만 지금은 경계를 넘어 동화와 소설을 자유롭게 쓰고 있다.

 

그는 원래 1994년 창비에 단편소설 ‘눈물 한 번 씻고 세상을 보니’로 등단했다.

 

당시 생태에 관심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태 관련 소설을 쓴 것이었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동화로 보였다. 그래서 동화를 쓰게 됐다.

 

‘하늘로 간 집오리’ 가 저서 중에서 많이 팔린 책 중에 하나다. 97년에 나왔는데 그때 이상권 작가가 왕성하게 활동했고, 아동문학이 떠오르던 시기였다. 우리나라 아동문학 초창기에 합평회 등에 나가 무료로 돕기도 했다.

 

이상권 작가의 초기작품은 북한산이 준 글이었다. 그 글이 대중성을 타고 많은 책들이 팔렸다. 생태에 관심을 갖고 생태를 다룬 초기작품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는 그런 작품들이 필요했던 시기였어요. 지식인들이 환경운동 측면에서는 접근했지만 문학이나 미술, 음악 쪽으로는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당시 야생화 사진을 찍는 사람조차 없을 때 그는 카메라를 들고 섬마을부터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글과 함께 풀어냈다. 처음이었다.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할 무렵, 대학원 대신 수동카메라를 구입해서 전국을 돌아다니는 길을 택했다. 작가가 되려면 우리말에 대해 강점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말 채록을 위해 전국을 다 훑을 때 어르신들을 통해 야생화의 지방어까지 다 채록을 했다.

 

채록을 하다보니 어린시절 농촌에서 자란 감성들을 회복하고 싶어서 나무, 풀, 물고기에 점점 더 다가서게 됐다. 생태가 이상권 작가에게로 바짝 다가왔다.

 

당시 전국을 혼자 돌아다니면서 야생화 지방어 사전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자료를 채록했다. 손으로 원고를 쓰던 시절이라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보냈더니 분실해버렸다. 그때가 93년쯤이었다. 출간됐더라면 대박을 쳤을 책이었는데 무명시절이라 하소연도 못한 채 흐지부지 됐다.

 

다행히도 머릿속에 입력돼 있어서 지방어 때문에 작가로 데뷔했다. 우리 야생화에 관련한 에세이집 3권을 출간했다.

 

무명작가로 정식 데뷔도 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야생화로 인해 방송까지 했다.

 

KBS1 라디오에서 왕종근씨와 함께 야생화와 관련해서 3년 동안 방송을 했다. 당시 국악방송을 비롯해서 고정 프로가 몇 개 더 섭외가 들어왔기 때문에 그때 어쩌면 방송으로 자리를 굳힐 수도 있었으나 다 거절하고 용인으로 내려왔다.

 

그가 조사한 야생화는 주로 논두렁, 밭두렁, 무덤가 등 민가 주위에 많이 자라는 먹을 수 있는 풀이었다. 우리조상들이 때론 뜯어 먹기도 하고 풀과 함께 같이 살아온 그런 풀들이었다. 산속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강원도 깊은 산골짝에 있는 야생화는 이름도 많지 않아요. 그런 풀은 사람들이 많이 접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많이 접한 것은 이름이 많아요. 사람마다, 뜯어먹을 때마다 이름이 다 다르기 때문이죠.”

 

그는 세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다른 게 소중한 것이라고 했다.

 

“절대적인 게 아니에요. 살아가면서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에요. 개망초는 요새 계란후라이풀이라고 하는데 그게 요즘 만들어진 거에요. 그게 소중한 거에요. 조금 지나면 없어지고 또 다른 이름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게 중요한 거에요. 근데 요즘 풀들은 지식이 발달하면서 굳어지는 거에요. 나머지 풀들은 사라지는 거에요.”

 

현재 광교산 자락 집 마당에도 많은 야생화가 자라고 있다.

 

“우리집에서 사는 야생화를 세보니까 120종 정도되요.”

 

예전에 원고가 분실됐을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포기했다는 작업. 다른 작품 못지않게 그 작업도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상권 작가 역시 꼭 한번 해보고 싶어한다.

 

그가 지금까지 해왔던 생태와 인간 욕망에 대한 이야기.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간 잊고 살았거나 망가뜨렸던 무수한 가치를 되찾고 회복할 수 있을까. 생태계의 복원과 인간성이 회복 돼 브레이크 없는 욕망에 제동이 걸리길 기대해본다.

 

한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한 이상권 작가는 그동안 ‘시간 전달자’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개 재판’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등 100여권에 이르는 작품집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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