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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의 문화예술인

혼이 담긴 가야금·거문고·아쟁 만들기 ‘외길’

용인의 문화예술인 12. 최태순 악기장

 

 

 

 

15세 때부터 현재까지 전통악기와 함께 한 삶
12줄 가야금 농현의 맛 사라진 25현 안타까움
거문고 등 작품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 기증

 

[용인신문] “지금 나는 일을 하기는 해요. 아쟁만 만들어요. 진짜 아까운 것이 가야금 선생이 없다는 것이에요. 오리지널 선생을 만나면 오리지날 악기를 만나야 하잖아요.”

 

한 평생을 가야금, 거문고, 아쟁 만드는 일에 신명을 바쳐온 경기도무형문화재 제30호 최태순 악기장(현악기).

 

요즘은 예전같이 가야금 주문이 많지 않아 동백 공방이 썰렁하다. 그의 말대로 12줄 가야금을 가르칠 제대로 된 선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최태순 선생은 15세 때부터 악기를 만들기 시작해서 벌써 65년여의 세월을 악기와 함께 살아왔다. 그런 그가 국악의 쇠퇴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악기를 만드는 장인이지만, 그 누구보다 소리를 잘 들을 줄 안다.

 

“진짜 나같이 귀동냥 많이 한 사람 없으니까. 딱 들어보면 알아. 잘 하는구나. 그러니까 그 사람 선생이 누구냐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그 사람한테 배웠어도 배운 사람이 성음이 않나오면 그건 아냐. 첫째 목적이 성음이야. 그것이 않나오면 끝이야.”

 

올해로 81세가 된 최태순 선생은 젊은 시절, 가야금의 유대봉, 거문고 한갑득, 대금에 동준이, 아쟁 김일구 등 최고의 연주가들과 늘 상 어울리며 귀를 호강시켰다.

 

“가야금을 다 만들고 줄을 고른 다음 음을 갖출 때 그것이 딱 맞춰졌을 때 그것처럼 기분 좋을 때가 없어.”

 

결국 최태순 선생은 악기를 만들었지만 평생 소리를 만들어낸 장인이었고 그것을 들을 줄 알고 즐길 줄 알았다.

 

작업장에서 만난 그의 첫마디는 가야금 한 줄로 세 개의 소리를 내는 농현의 맛과 멋이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요즘 신악기가 많이 나와서 우리 것이 퇴보된 것이 맞는 것 같아. 옛날 가야금이 12줄 아냐. 그런데 25현금이 나와서 가야금 산조라는 것이 없어지는 것 같아. 산조는 25현으로도 연주하지만 맛이 아냐. 원래 가야금은 12줄을 가지고 25줄 이상의 소리를 내는 거야.”

 

최태순 선생은 그것을 농현이라고 했다. 한 줄에서 세 개의 소리를 내니 결국 12줄에서 13줄이 늘어난 것과 같다. 그런데 25현은 농현 없이 25 줄을 뜯기만 하는 것이다.

 

“산조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 계셨는데 다 돌아가셨어. 잘하는 선생이 없으니까 가야금도 점점 없어지는 거야. 지금은 한두 명밖에 안 남았을 거야.”

 

현악기의 퇴조는 최태순 선생한테도 타격이다. 요즘은 대부분 25현을 사용한다. 연주가 쉽기 때문이다. 더구나 25현은 악보가 있다. 당연히 악보가 있으니 악보대로 줄을 퉁기기만 하면 된다. 과거에는 한 줄에서 세 개의 소리를 내야 했지만 지금은 세 줄을 음대로 퉁기면 그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요새 국악하는 사람 가운데 한 줄로 소리를 내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 가야금이 특이한거지. 한 줄로 세 음 내는 것이 외국서도 없어. 줄을 눌러서 조절하는 거야. 한 줄 가지고 고음을 내는 거야. 음이란 게 원래 아 하면 아 하는데, 아 하면 아아. 그 소리를 잡기가 얼마나 어렵냐. 나는 악기만 만들었지만 그 음을 들을 줄 알아. 그런데 들을 줄 아는 사람도 이제 몇이나 되겠냐는 것이지.”

 

선조들의 놀라운 음악성이 아닐 수 없다.

 

“25현은 만드는 것도 쉽고 25줄 가지고 소리 내는 것도 퉁기면 되니 쉬운거야. 그런데 12줄은 눌러서 흔들고 많이 떠는 것도 있고 느리게 떠는 것도 있고 손의 바이브레이션이 다 다른거야. 그만치 어렵고 심금을 울리는 소리지. 그 정도 대가가 몇 사람 안됐어.”

 

최태순씨는 자랄 때 전주에서 살았다. 6.25 전쟁 후 공방이 전주에 있었기 때문에 그때 돌아다니던 국악의 대가들을 다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수리하러 오는거지. 창극단 다니는 사람들이 악기 가지고 다니잖아. 그분들이 다 다녔으니까. 줄도 갈러오고 고치러도 오고. 여성국극단도 많이 다녔어. 대금부는 사람, 장구치는 사람, 악기 하는 사람들이 다 집에 오니까 다 듣고 다 봤지. 한 달에 한 두 번은 창극단이 들어왔어. 그러면 음악 하는 사람들이 다 나를 이뻐해. 극장에 따라가서 무대 안에서 반주하는데 앉아서 듣고 그랬으니 얼마나 좋아.”

 

최태순 선생은 고모부로부터 악기 만드는 것을 배웠다. 고모부는 중요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고 김광주 선생이다. 고모부 아버지부터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최태순 선생은 초등학교 졸업 후 고모부 집에 살면서 일을 배웠다. 워낙 손재주가 뛰어난 그는 일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가 18살 때 만든 자신의 가야금은 가보로 간직해오고 있다.

 

“숨어서 만들었지. 그때만 해도 일이 바빴어. 주문이 많으니까. 내 것을 만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지. 내가 가야금 하나 만들어야겠다 하고 고모부 낮잠 잘 때 한 두 시간씩 아마 일 년 걸려서 만든 걸 거야.”

 

고모부가 딱 쳐다보고는 “참 잘 만들었다”고 감탄했다.

 

소 갈비뼈로 무늬를 넣은 것부터도 그렇고 뒷 판의 해, 달, 손잡이 테두리까지 소갈비로 감쌌으니 섬세한 게 명품이었다.

 

1961년 국립국악원에서 전국 최고의 악기장 3명을 물색해 국악기를 복원했는데 그중 한명으로 초대됐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 양금 등 없어진 현악기를 다 복원했다.

 

그 후 서울 종로에 살면서 지인과 국악사를 동업하다가 망하고 나서 용인 한국민속촌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민속촌에서 공방을 세 개나 쓰라고 내줬지만 거절했다.

 

그는 한때 가야금 연주를 배우고 싶었다. 전주서 일 배우면서 가야금을 탔다. 그런데 고모부가 보고는 “너 가야금 배우지 마라. 가야금 배우면 니가 악기 만들겠냐”며 못하게 했다.

 

그의 작품 가야금과 거문고는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 미국민속축제 때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했다.

 

“언제 어느 때 전시를 할지 모르지. 창고 속에 들었대. 미국 가서 전시 후에 기념으로 주고 온거야. 난 전혀 속상하거나 아깝지 않아. 주고 간 대단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거야. 몇 백년 후에 전시가 될까 몰라. 얼마나 행복이야. 내가 죽은 뒤에라도 전시가 된다면 내가 다시 태어나서 볼 거 아냐. 나는 다시 태어나도 악기 만들고 싶어. 정성껏 혼을 들여서 만드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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