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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시인의 감동이 있는 시

[용인신문] 갯 벌

                      안영선

 

달은 수음 중이다

 

달빛 속에서 바다가 출렁거린다 달이 바다의 물기를 빨아드리자 축축하게 감춰둔 갯벌이 열린다 여자 몇 질퍽한 갯벌 위로 다리 하나를 내놓고 휘젓는다 투명한 무게에 눌려 잠잠하던 생이 꿈틀거린다 널배 위 출산의 기억을 잃은 덩치 큰 자궁이 하나씩 놓여 있다 여자의 낡은 자궁이 지나간 자리마다 질퍽한 새 항로가 새겨졌다 자궁을 깨끗이 비워낸 여자의 손 몇이 꿈틀거리는 생식기처럼 갯벌을 더듬는다 한 여자의 섬세한 촉수에 출렁이는 갯벌이 황홀경에 젖는다 갯벌은 생의 비애를 맛보는 것과 깊이 숨어드는 것들로 분주하다 젊은 날 여자는 몸에서 어린 영혼을 분리해 낸 적이 있었다 하나를 덜어내면 다른 하나가 생길 거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여자의 갯벌은 더 이상 축축하지 않았다 여자는 바다 속 갯벌의 빈 자궁을 상상한다 무심코 지나온 길은 다시 돌아가야 할 미궁의 길 회귀의 항로가 혼미하다

 

수분을 토해낸 달은 바다에 빠져 갯벌과 한창 교미 중이다

 

 

안영선은 2013년 『문학의 오늘』 제1회 신인상으로 문단에 나왔다. 그의 시세계는 진솔하고 허위의식이 없으며 과장하지 않고 묵직하며 예리하다.

「갯벌」은 그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첫 문장 ‘달은 수음 중이다’는 도발적이다. 이 도발적인 문장은 생명의 잉태를 희원하는 달의 몸부림을 이미지화 한다. 달의 생명에의 몸부림이 밀물과 썰물을 만들고 수많은 생명의 잉태를 가능케 한다.

이 시는 에로티시즘을 내장하고 있다. 그 에로티시즘이 생명과 연결되면서 육욕의 본능으로 읽히지 않고 생명이라는 본질적인 화두를 생각하게 한다. 생명은 이 시대의 이데올로기이다. 안영선은 건강한 지구를 견인하는 달의 인력이 생명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아낙들의 섬세한 촉수로 황홀경에 젖는 갯벌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출산의 기억을 잃은 자궁은 쓸쓸해야만 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조금도 쓸쓸하지 않다. 자궁이 지나간 자리마다 질퍽한 새 항로가 새겨지기 때문이다. 그 항로를 따라 자식들이 출항할 것이고 어딘가로 항해를 해 갔을 것이며 어딘가에 정박해 삶의 터전을 일구었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절수술을 경험한 여인의 미궁의 길, 회귀의 혼미한 항로를 보여주기도 한다. <천년의 시작> 간 『춘몽은 더 독한 계절이다』 중에서. 김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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