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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판의 재탄생… 새로운 시도할 때마다 짜릿”

용인의 문화예술인 21. 빨래판 작가 오성만

 

 

 

[용인신문] “나의 작업은 빨래판을 쪼개어 붙이거나 오브제로 활용해 하나의 형태로 형상화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재료에서 벗어나 새로운 매체에 대한 탐구를 통해 표현적 특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죠. 빨래판으로 작업을 시작한지 벌써 30년입니다. 돌아보니 긴 세월이네요. 할 때마다 새로운 시도가 짜릿하기에 앞으로도 이 길을 계속 가고 싶습니다. 이제 저도 환갑을 넘기다보니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작업을 한다는 것이 갈수록 수월하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고되고 힘들지만 작업을 하지 않으면 심장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니 내가하는 일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작업을 할 수 있는 창조적 에너지가 있음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빨래판 작가 오성만 선생이 화업 30년을 돌아보는 초대전 ‘조형언어를 탐하다’를 한국미술관에서 10월 30일까지 개최하고 있다.

 

30년 전에 빨래판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였을 당시 오성만 선생은 화제의 중심에 섰다. 그가 빨래판으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회를 한다고 했을 때 관람객들은 빨래판이라는 재료에 낯설어 했고, 또 한편으로는 흔하디 흔한, 그리고 천덕꾸러기 빨래판이 멋진 미술품으로 변신해 전시장에 걸려 있는 모습에 흥미로와 했다.

 

30대 청년의 열정으로 빨래판을 선택했던 그는 환갑을 넘긴 요즘도 변함없이 빨래판 사랑을 과시하면서 세탁기에 밀려나 찾아보기조차 힘들어진 빨래판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제  빨래판은 오성만 선생의 본질이 됐다.

 

도대체 30년이란 오랜 세월 질리지 않고 그를 천착하게 만든 빨래판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이번 전시회가 혹 새로운 모색을 위한 정리 차원의 전시회는 아닐까.

 

그러나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갔고 너털웃음만이 터져 나올 뿐이다. 더 큰 빨래판 작품을 준비 중에 있었다. 그는 새로운 빨래판 작품을 위해 이미 폭스바겐 더 비틀 중고차량 한대를 구입해 놨다. 그 자동차를 온통 빨래판으로 뒤덮을 새로운 계획에 벌써부터 즐거워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그의 빨래판 여정은 체력이 허락하는 한 당분간 지속될 것이고 점점 더 가속화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오브제는 현대 미술의 출발점이다. 현대 미술에 있어서 다양한 시도 가운데 하나가 재료와 매체의 확대다.

 

오성만 선생은 물감과 같은 전통적인 재료에 국한하지 않고 일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들을 변용하고 재해석해 무궁무진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켜왔다.

 

오성만 선생은 하찮은 일상의 재료를 자신만의 독창적인 조형 언어로 풀어내 멋진 작품으로 완성해 내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오성만 선생이 단순히 재료의 물성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그는 재료에 깃들어 있는 메시지를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그가 선택한 재료는 이미 메시지이기도 한 것이다.

 

재료에는 작가의 내면세계와 어우러져 풍기는 정취와 형식을 드러내는 이미지가 내재되어 있고, 곧 오성만 선생의 조탁을 거치면서 메시지는 겉으로 드러나게 된다. 물론 메시지를 읽어내는 노력은 순전히 관람객의 몫으로 남게 된다.

 

“재료마다 메시지가 깃들어 있죠. 내가 굳이 뭔가를 제시하려들지 않더라도 저절로 메시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관람객의 몫이죠.”

 

작가가 선택하고 추구하는 재료는 메시지를 반영하는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의도하는 내면의 울림이 이미 재료에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오성만 선생은 컴바인 페인팅(combine painting)적 표현으로 조형언어를 추구하고 있다. 컴바인 페인팅은 2차원, 혹은 3차원적 물질을 회화(繪畵)에 도입한 작품을 말한다.

 

캔버스나 종이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리는 보편적인 표현 방식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사물과 물질을 도입해 표현하기 때문에 일종의 확대된 오브제 혹은 콜라주라고 할 수 있다. 컴바인 페인팅에 쓰이는 빨래판이라든가, 한지, 청바지 같은 오브제는 우리가 익히 보아왔거나 알아왔던 사물이 아니다. 결국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이 작가의 관심과 상상력에 의해 특별한 조형언어로 태어나게 된다.

 

오성만 선생은 독특한 기법으로 시간의 흔적이 묻어나는 빨래판에 삶의 이야기를 담아왔다.

 

독자적인 재료 실험에 몰두하면서 빨래판의 물성을 담아내는 공간 구성의 미학을 끊임없이 추구해 왔다. 그의 작품은 입체와 평면성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빨래판 외에도 한지(韓紙), 계란포장지, 항아리, 철사 같은 생활주변의 숱한 재료와 매체에 대한 부단한 실험과 연구가 이어져 왔고, 보다 넓고 깊은 스펙트럼의 조형언어가 구축돼 가고 있다.

 

빨래판을 자르고 붙여 퍼즐처럼 연결하는 과정 속에서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오성만 선생.

 

오성만 선생은 이같은 재료를 통해 한국적 추상을 이어가고 있으며, 다양한 평면·입체 공간 속에 독창적인 무한함을 펼쳐내고 있다. 어느 한 장르에 갇히지 않고 모든 조형적 요소를 보여주며 전통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적 조형미를 추구하고 있다.

 

외형의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는 오성만 선생의 작품에는 고졸하고 질박한 아름다움과 독특한 감성의 한국적 미감이 깊게 흐른다.

 

“한국인의 정서적인 본질을 파악하고 지나친 조작을 멀리하며, 고졸하고 단아한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는 게 내 작업의 주안점이에요. 말하자면 조작적인 기교(技巧)와 교졸(巧拙)함을 걷어내고 소박하고 질박한 고졸(古拙)미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