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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내려온 연안이씨 종갓집 전통장 비법 고수

용인의 문화예술인 23. 다인네 외갓집 전통장 전수자 이문자 선생

 

 

 

 

분당서 고교 교사 재직하며 친정 어머니 장맛 고스란히 이어받아
장독대에 보물같은 묵은장 항아리… 남녀노소 체험의 장으로 진화

 

[용인신문] 이문자 선생은 연안이씨 저헌 이석형 선생의 18대 후손으로 처인구 모현면 능원 3리에서 400년 이어 내려오는 연안이씨 종갓집의 전통장 비법을 전수하고 있는 전수자다.

 

그녀는 이씨 집안의 며느리가 아니라 집안의 딸로서 조상 대대로 이어내려오는 장맛을 전승하면서 전통 발효 음식 체험 교육장인 '다인네 외갓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녀가 현재 교육하고 있는 곳은 친정 아버지가 물려준 아버지 농장터다. 마당에 장 항아리가 즐비하다.

 

유독 아버지를 따랐던 그녀는 퇴직 후 돌아오려던 고향땅에 미리 돌아왔다. 친정 아버지가 작고하자 혼자 남게 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였다. 당시 분당에서 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고 있던 그녀는 출퇴근을 하면서 친정 어머니의 곁에 머물며 어머니 장맛을 고스란히 맛보고 기억했다.

 

친정 어머니는 종갓집 맏며느리가 아니었다. 큰댁 맏며느리가 일찍 돌아가셨고 다시 들어온 맏며느리는 신식 어머니셨기에 이를 대신해 이문자 선생의 어머니가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을 하면서 장맛을 지켰다.

 

그런 어머니가 2000년에 작고했다. 어머니가 남겨 놓고 간 장항아리가 100개였다.

 

큰 항아리 5개에는 늘 된장이 가득히 담겨있었고, 간장 항아리도 5개, 고추장 항아리도 5개, 이런식으로 항아리가 가득 가득 차 있었다. 그만큼 장이 묵었다. 먹는 장이 다 달라서 제사만 지내는 장, 손님이 오거나 잔치를 할 때 먹는 장, 평상시에 먹는 장 등으로 구분됐다.

 

이 선생이 어렸을 때 동네 가구수가 18세대였는데 제사 때나 장 담글 때면 동네 사람들이 와서 함께 일을 했다. 그 사람들이 다 그 장을 나눠 먹었으니 장을 많이 담가야 했다.

 

어머니 작고 후 봄이 오자 이 선생은 오이와 파를 심으려고 큰 항아리를 열었다. 친정 어머니가 항아리에 씨앗을 넣어두는 것을 봤었기 때문이다. 어느 항아리인지 몰라 우연히 한 항아리 뚜껑을 열었더니 항아리가 비어있었다. 어느 것은 용수가 들어 있었다.

 

“어머니가 안 계시는구나.” 돌아가셨어도 크게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다가 그제서야 세상이 다 빈 것처럼 상실감이 크게 느껴졌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

 

“상실이라는 말. 가슴이, 온 세상이 확 없어진 것 같았어요.”

 

그때 이 선생은 자신이 다시 장을 담아 항아리를 채우면 그런 상실감이 덜할까 해서 해마다 장을 담그게 됐다. 처음에 한 두 가마로 시작해 대여섯 항아리를 채울 때 즈음인 2006년 용인시농업기술센터에서 이곳을 답사했다. 장맛을 보더니 체험 사업을 권했다. 2007년부터 전통발효음식체험교육장을 시작하게 돼 지금은 이 선생이 새로 구입한 50개 항아리까지 더해져 항아리마다 장이 거의 다 차 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생, 중고생에 더해 요즘은 성인까지 체험 교육을 한다. 된장, 간장 공고를 내면 요리학원 강사를 비롯해 복지관, 아파트 부녀회 등 다양한 단체에서 신청이 밀려든다. 역시 전통 발효식품인 김장 김치 체험도 운영하고 있다. 이 선생의 딸이 돕고 있으며, 외손녀딸인 다인이가 이 선생이 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대를 이어 앞으로도 계속 장맛이 이어져 나갈 것이 분명하다.

 

이 선생의 부친은 아들 딸 구별 말고 둘만 낳자라는 표어를 지은 장본인이다. 개인적으로 했던 말을 보건복지부에서 공식 발표했고, 보건복지부장관 상도 탔다. 5.16 혁명 후 가정의례준칙이 발표 됐을 때 서울대 교수와 보건복지부 직원이 전국 유림을 찾아다니면서 사전 조사를 했다. 그때 부친은 사람들이 못사는 이유가 아들 선호 때문이라며 아들 딸 구별하지 말고 둘만 낳아야 한다고 했더니 그걸 둘만 낳아 잘 기르자로 하여 발표했다. 그밖에도 결혼식 허례허식과 장례를 지낼 때 굴건제복하는 것 등 부친이 없애고 새롭게 정한 게 많다.

 

일찍이 생각이 깨인 유림의 집안에서 400년 장맛이 대대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