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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내게 문학의 인연을 맺어준 용인

안영선(시인, 용인문학회장)

 

[용인신문] 1991년 2월 15일. 딱 삼십 년 전, 그날은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진천행 버스를 타고 무려 네 시간도 넘게 걸려 도착한 곳이 용인군 내사면(현재 양지면) 양지리. 그날은 커다란 가방을 들고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따라 내 인생의 첫 직장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물론 약속 시간보다 한참은 늦은 시간이었다. 첫 직장인 학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선생님들은 모두 퇴근한 뒤였다. 그날 밤 벌판을 가로지르는 칼바람을 피해 시골 중학교 숙직실에서 불편한 잠을 아주 달콤하게 잤던 기억이 지금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는 이리 오래도록 용인과 인연을 맺을 것이라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용인과 인연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아니,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행여 놓칠세라 더 꽉 움켜쥐고 있었는지도 모르리라. 이십 대의 청춘이 오십 대의 중년으로 멋지게 익어갈 수 있었던 터전이 바로 용인이었으니 말이다.

 

용인에 정착한 후 한 십 년쯤 지났을까. 시인이 되고 싶다던 청춘의 꿈이 점점 식어갈 때쯤 용인은 무심한 척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용인문학회와의 이십 년 동고동락. 그곳에는 참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 순박한 사람들은 치열하게 시를 쓰고, 때로는 그 시를 신랄하게 평가하면서도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줄 줄 아는 따뜻함이 있다. 순박하지만 ‘용인 문학 순례길’을 만들어보겠다고 지역 문학 유적을 찾아 나서던 사람들, 사거용인의 명성답게 수많은 공원묘역에서 유명 작가의 유택을 찾아 답사길을 만들던 억척스러운 사람들, 투박한 손으로 ‘약천 남구만 문학제’를 만들어 해마다 문학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 그 순박한 사람들의 만드는 소박한 온기가 있어 참 좋았다.

 

올해는 이십 년을 함께한 용인문학회에서 회장직을 내려놓는다. 다른 단체와 달리 용인문학회는 회장 선출 방법이 좀 독특하다. 선거가 아닌 만장일치에 의한 추대 방식으로 뽑는 것이다. 행여 ‘요즘 시대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추대의 회장 선출 방식은 상당히 전통적이면서도 회원 모두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어쩌면 순박한 사람들이 만든 자생 단체이다 보니 가능한 일이 아닐까도 싶다. 지자체의 지원이 전혀 없던 시절에도 주머니를 털어 문예지를 만들던 저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우리는 지난 일 년을 코로나19와 함께 살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함께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돌아보면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마스크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 되었고, 실시간 원격수업에 교육 현장은 들썩거렸다. 결혼과 장례 문화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 이십 년 후쯤의 세상으로 성큼 다가선 느낌이다.

 

오늘은 문학회 임원들과 신임 회장 추대를 위한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팔십을 바라보는 노시인이 시행착오 끝에 스마트폰으로 화상회의에 참여하는 멋진 모습을 보면서 힘찬 박수를 보낸다.

 

내게 문학의 인연을 맺어준 용인의 하루가 저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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