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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 용인愛

엡스타인 효과

손대선(전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용인신문] 2003년 29세에 불과한 테오 엡스타인이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에 취임했다. 예일대에서 정치‧ 심리학을 공부하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인턴 생활을 한 엡스타인은 두 번째 직장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홍보 일을 한 게 경력의 전부였다. 바쁜 직장생활 중 변호사 자격증까지 딴 수재이지만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인기구단의 수장을 맡기에는 너무 어리다는 평가가 많았다. 당시 단장들은 50대가 대세였다.

 

레드삭스가 엡스타인을 구단 간판격인 단장으로 영입한 것은 백약이 무효인 구단 상황 무관치 않았다. 넓은 시장과 열성적인 팬, 여기에 탄탄한 재정까지 갖춘 레드삭스는 1919년 이래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돈 많이 받는 스타는 즐비했지만, 모래알 같은 조직력으로도 유명했다. 승부처마다 실책이 속출했다. 그 유명한 ‘밤비노의 저주’는 따지고 보면 이 고비용 저효율 구단이 내세울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마케팅이었을 지도 모른다.

 

단장이 된 엡스타인은 선수 영입, 방출, 트레이드, 드래프트에서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힘 빼놓고 봐줄 게 없다는 데이빗 오티즈, 열정적이기만 하다는 케빈 밀라를 영입했다.

 

취임 첫해 포스트시즌 진출 성과를 낸 엡스타인은 이듬해 승부수를 던졌다. ‘우승 청부사’ 커트 실링을 영입한 뒤 타격왕을 지낸 프랜차이즈 스타 노마 가르시아파라를 내쳤다. 대신 수비에 특화된 올랜도 카브레라와 덕 민트키에비치를 영입했다.

 

엡스타인은 타율, 평균자책점 등 선수 능력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기록보다는 출루율+장타율, 이닝당 출루허용률, 대체선수 승리기여도 등 당시에는 생소한 데이터를 파고들었다. 기록지에는 없지만 팀 경쟁력에 보탬이 되는 승부사 기질이 강한 선수도 끌어들였다.

 

레드삭스는 2004년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에서 숙적 뉴욕양키스를 리버스 스윕으로 꺾었다. 대망의 월드시리즈에 올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꺾고 86년 만의 우승을 일구어냈다. 엡스타인이 영입한 선수들은 마치 잘 짜여진 각본처럼 승부처에서 제각각 역할을 해냈다.

 

엡스타인는 레드삭스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한 번 더 선사한 뒤 ‘염소의 저주’로 유명한 시카고 컵스 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108년을 이어져 온 월드시리즈 우승 갈증을 해소시킨다.

 

엡스타인의 성공에 힘입어 메이저리그에서는 존 대니얼스, 앤드류 프리드먼 등 20대 명단장이 줄줄이 배출됐다. 올해로 출범 118주년이 된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엡스타인 효과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