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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2 |긍정적인 밥 | 함민복

울림을 주는 시 한 편-2

긍정적인 밥

함민복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밥, 하고 발음하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짠해진다. ‘밥 먹고 산다’라는 말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 대장정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십 몇 년 전, 함민복 시인과 필자는 명동성당 앞 허름한 지하살롱(막걸리집을 그렇게 불렀다)에서 며칠이 멀다 하고 술을 마시곤 했다. 오월에서 유월, 그 뜨겁게 달구어진 백주대로를 따로 또 같이 뛰어다니다 해 지면 하나둘 지하살롱으로 내려와 밤들이 노닐곤 했던 것이다. 안주는 주로 파인애플(단무지), 허기와 눈물과 막걸리 범벅이 되어 몇은 노래 후렴구와 함께 쓰러지고 또 몇몇은 밤늦도록 시와 밥을 이야기 하곤 했다. 아주 가끔, 그가 사는 강화도에 가서 형편 좀 나아졌다고 요즘엔 파인애플 대신 회를 시켜 놓고 술을 마신다. 여전히 시 한 편으로 쌀과 국밥과 소금을 살 수 있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 그 이 앞에서 어지간히도 때가 묻은 필자의 마음은 갯가의 폐선처럼 한없이 가라앉기만 하는 것이다. 박리로 살다 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다. 누구든 마지막 순간엔 생의 원금인 목숨마저 헐하게 내놓아야 하는 법, 그래 이왕이면 이자보다는 이름을 남기고 가자. 상처보다는 사랑을 남기고 가자.

■ 박후기 시인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가 있으며, 제24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다. 현재 기흥구 동백동에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