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20 (월)

  • 구름많음동두천 17.5℃
  • 흐림강릉 14.5℃
  • 맑음서울 17.5℃
  • 맑음대전 19.1℃
  • 구름조금대구 17.4℃
  • 구름조금울산 15.7℃
  • 맑음광주 19.9℃
  • 구름조금부산 17.6℃
  • 맑음고창 ℃
  • 구름많음제주 20.1℃
  • 흐림강화 14.8℃
  • 맑음보은 17.4℃
  • 맑음금산 18.7℃
  • 구름많음강진군 19.5℃
  • 구름많음경주시 16.2℃
  • 구름조금거제 18.2℃
기상청 제공

울림을 주는 시 한 편-10 |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 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 하지 않았다

십 수 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2003년, 대추리 논바닥에서 처음 송경동을 만났다. 그리고 지금껏 필자는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소하고 낡고 연약한 것들을 사랑하기로서니 어느 시인이라고 다를까마는, 그의 행동과 말과 시는 서로 다르지 않았다. 대추리, 기륭전자, 콜트 콜텍, 용산 재개발지구 등 억압받는 이들의 싸움터에 늘 그가 있었고, 그로 인해 詩와 예술이 삶의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있었다. 詩가, 예술이 꼭 현실에 복무할 필요는 없으며 필자의 생각도 크게 다르진 않다. 그러나 예술과 시민이 부조리한 현실을 외면했을 때, 그 사회는 惡의 영역에 편입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惡은 머지않아 당신 집 대문의 초인종을 누르게 될 것이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