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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13 | 용산을 추억함 | 박소란

용산을 추억함 | 박소란

용산을 추억함

 박소란

폐수종의 애인을 사랑했네,
중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용산우체국까지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한강로 거리를 쿨럭이며 걸었네
재개발지구 언저리 함부로 사생된 먼지처럼
풀풀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도시의 몸 구석구석에선 고질의 수포음이 새어나왔네
엑스선이 짙게 드리워진 마천루 사이 위태롭게 선 담벼락들은 저마다
붉은 객담을 쏟아내고 그 아래 무거운 날개를 들썩이던
익명의 새들은 남김없이 철거되었네
핏기 없는 몇 그루 은행나무만이 간신히 버텨 서 있었네
지난 계절 채 여물지 못한 은행알들이
대진여관 냉골에 앉아 깔깔거리던 우리의 얼굴들이
보도블록 위로 황망히 으깨어져갔네
빈 거리를 머리에 이고 잠든 밤이면 자주 가위에 눌렸네
홀로 남겨진 애인이 흉만(胸滿)의 몸을 이끌고 남일당 망루에 올라
오, 기어이 날개를 빼앗긴 한 마리 새처럼
지옥불 일렁이는 아스팔트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쳐가는 불온의
미몽이 사이렌처럼 머릿속을 낭자하게 물들였네
상복을 입은 먹구름 떼가 순식간에 몰려들었네 깨진 유리창 너머
파편 같은 눈발이 점점이 가슴팍에 박혀왔네
한숨으로 피워낸 시간 앞에 제를 올리듯
길고 긴 편지를 썼으나 아무도 돌아올 줄 모르고
봄은 답장이 없었네 영영
애인을, 잃어버린 애인만을 나는 사랑했네

 

매일매일 거대한 암흑기의 전야(前夜)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곧 휘몰아칠 폭풍의 기시감 같은 것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우리가 기를 쓰고 해 질 무렵의 스러지는 빛을 즐기자마자 거대한 폭풍이 몰려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소리 지르고 싶어도 입술이 안 떨어지고 도망치고 싶어도 발이 땅에 붙어 꼼짝달싹 할 수 없는 꿈속의 가위눌림이 현실이 되어 나타나고 있다. 시인이란 어떤 징조를 드러내주는 리트머스 종이와도 같다. 갱도의 카나리아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이태 전 등단한 박소란의 시를 읽으면 우리가 다시 중세로 돌아가고 있다는 이 느낌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