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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주는 시 한 편 -14| 정로환 | 윤성학

정로환

              윤성학

가실 때, 정로환 한 병을 가방에 넣어드렸다

멀리서 손주딸 살림을 들여다보러 온 처할머니가
선 채로 똥을 지렸다
다리를 타고 내린 덩어리 하나가
바닥에 멈추어섰다
아내는 얼른 달려가 휴지로 그걸 훔쳐내었다
바지를 벗기고 노구를 씻겼다

딸아야,
아래를 잘 조이고 살아야 여자다
고개 돌려 모른 척하던 손주사위가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인다
구멍이 헐거워
밑살이 아물지 않아
내 속이 늘 가지런하지 못했다

때론 분노를 때론 눈물을
몸에서 놓치곤 했다
늙는다는 건
구멍이 느슨해진다는 것이 아니었다
얼마나 더 늙어야
나의 구멍들을 다스릴 수 있을 건가

가실 때,
정로환 다섯 알을 내가 먼저 꺼내 먹고
가방에 넣어드렸다


추석도 지나고, 이젠 널린 그릇이며 술김에 쏟아진 감정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을 때다. 다 먹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누구에게 싸주지도 못해 그만 상해버린 음식처럼, 우리의 부모들도 혼자 남겨져 가을 장마에 몸과 마음이 상해가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선 채로 똥을 지리며 ‘아래를 잘 조이고 살아야 여자’라고 말하는 처할머니 곁에서 윤성학 시인은 ‘때론 분노를 때론 눈물을 몸에서 놓치곤 했’던 자신의 ‘구멍’을 반성한다. 구멍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제 몸과 마음의 구멍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