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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19|붉은 잎 |류시화


붉은 잎


류시화

 

그리고는 하루가 얼마나 길고
덧없는지를 느끼지 않아도 좋을
그 다음 날이 왔고
그 날은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붉은 잎, 붉은 잎, 하늘에 떠가는 붉은 잎들
모든 흐름이 나와 더불어 움직여 가고
또 갑자기 멈춘다
여기 이 구름들과 끝이 없는 넓은 강물들
어떤 섬세하고 불타는 삶을 나는 가지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졌었다, 그렇다,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하찮았던가, 여기 이 붉은 잎, 붉은 잎들
허공에 떠 가는 더 많은 붉은 잎들
바람도 자고 물도 맑은 날에
나의 외로움이 구름들을 끌어당기는 곳
그것들은 멀리 있다, 더 멀리에
그리고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그것들을 겨울하늘 위에 소용돌이치게 하고
순식간에 차가운 얼음 위로 끌어내린다

 


그의 본명은 안재찬, 그러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그는 분명 나무의 후생(後生). 움직일 수 없어 붉은 잎을 대신 강물에 흘려보내는 뿌리의 밀사. 잎이 흐르고 흘러 더 이상 흐를 수 없는 곳에 닿았다면 그곳이 서방일 터. 붉은 잎들이 절집 마당을 찾아와 밤새 떠돌다 이른 새벽 흔적도 없이 쓸려나갔나 싶더니만, 저를 버린 나무 밑에 깃들어 조용히 얼어붙는다. 생이든 죽음이든 어차피 시간을 견디는 일. 견디다보면 잎이 되었다가 나무가 되었다가, 나였다가 너였다가, 견디다보면 어차피 모두 지나갈 인연들.
박후기 시인 hoogiwoog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