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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신문] 김종경 칼럼
공직자의 청빈과 가난

정약용은 ‘청렴은 모든 선의 원천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라고 했다. 물론 재산이 많다고 청렴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의식 있는 선비들이 왜 부를 축척하지 않고 청빈한 삶을 고집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시대 3대 청백리로 꼽히는 아곡 박수량(1491∼1554)은 묘 앞에 세워진 ‘백비(白碑)’로 유명하다. 아곡은 24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 호조판서를 비롯해 주요 요직을 38년간 두루 걸쳤다. 그런데도 비가 새는 낡은 집에서 기거할 정도로 청빈한 삶을 살았다.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는 묘를 크게 쓰지 말고 비석조차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남긴 유품은 임금이 하사했던 술잔과 갓끈이 전부였다고 한다.

당시 명종은 운상비가 없어 고향으로 가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장례비를 마련해 주고 서해안의 하얀 화강암을 골라 비를 하사하게 된다. ‘청백함을 알면서 비석에 글을 새긴다면 이름에 누가 될지 모르니 글자 없이 세우라’고 해 지금의 ‘백비’가 됐다는 것이다.

청렴과 가난은 분명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정당한 경제활동을 통한 부를 얻는 것은 죄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난이 죄도 아니다. 선인들은 아마도 권력의 자리에서 받는 각종 유혹을 경계하기 위해 스스로 정한 삶의 철학과 원칙이 바로 청렴함과 가난이었을 것이다.

극심한 경기불황 속에서도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 10명 가운데 6명의 재산이 증가했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 3월 공개한 2012년도 고위 공직자 재산 변동 신고 결과, 재산 공개 대상자 2329명중 1399명(60.1%)의 재산이 늘었다. 이중 행정부 1844명중 62.2%인 1147명, 사법부 159명중 50.3%인 80명, 입법부 293명(국무위원 겸임 제외)중 146명(49.8%)의 재산이 늘었다는 것. 재산 증가 요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 요인이 가장 컸다. 신고 재산 평균액은 11억 8200만 원으로 이중 60.6%의 재산이 10억 원 미만이고, 그중 1억 원에서 5억 원 미만이 26.9%로 가장 많았다.

그런데 이들 중 29.3%인 683명이 자녀의 재산 보유 현황을 신고하지 않겠다며 ‘고지 거부’를 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도 4년째 ‘독립 생계유지’를 이유로 장남의 재산은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이 역시 재산공개 내역을 정확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태다.

매년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를 보며 생각나는 것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다. 정권 말기 탓인지 권력의 심장부에 있던 인사들이 부정· 부패에 연루돼 줄줄이 감옥행을 하고 있다. 유독 부패 지수가 높은 우리나라 정치권의 악순환인 듯해 씁쓸하다.

중앙 정치권이나 지역정가 모두 시끄럽다. 분란의 요인은 결국 돈이다. 권력의 부패나 도덕성의 붕괴 역시 돈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렴한 사람이 바보 또는 무능한 사람으로 취급 받는 세상이다. 그래서 이럴 때야말로 고위공직자를 비롯한 목민관들의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부의 축적이나 특혜를 받아서는 안된다. 일반 공직자들도 진정한 목민관의 자세가 무엇인지, 섬김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다.

다음은 다산 정약용의 시다.

가을이 무르익어도 쌀은 오히려 귀한데/ 우리 집 가난해도 꽃은 더욱 많아라/ 국화가 활짝 피어 가을 속에 묻힌 곳을/ 벗들이 알아보고 밤중에 몰려드네/ 술을 퍼부으면 시름이 다할 것인지/ 시는 지었다 하나 그 무엇이 즐거우랴/ 한생은 올바르고 진중한 선비이건만/ 요즈음 시를 지으며 미친 듯 노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