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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을 주는 시 한 편 - 100 | 산문시(1) | 신동엽

   

 

박후기 시인이 <울림을 주는 시 한편>을 연재하기 시작한지 벌써 100회째다. 주간 신문에서 100회면 2년이다. 원고를 써놓고도 컴퓨터 에러로 딱 한번 펑크가 났다. 가난한 시인은 발행인과의 친분 때문에 원고료도 없이, 그렇지만 그 어떤 재벌신문들의 시 코너보다도 울림이 강했고, 뜨거웠다.
시 나부랭이를 쓴다며 동료애를 구걸한 발행인 김씨의 “이왕 내친김에 1년만 더……”라는 부탁을 차마 거부하지 못한 박 시인이 또 다시 1년 연장을 약속했다. 어쩌랴. 신문은 가난해도 울림이 있는 당신의 따뜻한 시선과 심상에 빠진 독자들이 많은 걸.
<편집자 주>


 

 

   
▲ 박후기 시인.

 

 

“울림이 없다면 사랑도 없는 거야”
“울림이란 메아리 혹은 반향인 것을 … 내 글이 침묵하는 당신의
저녁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처럼 그렇게 낮은 ‘반울림’이었으면”



散文詩(1)


신동엽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 탄광 퇴근하는 광부들의 작업복 뒷주머니마다엔 기름 묻은 책 하이덱거 럿셀 헤밍웨이 장자(莊子) 휴가여행 떠나는 국무총리 서울역 삼등대합실 매표구 앞을 뙤약볕 흡쓰며 줄지어 서 있을 때 그걸 본 서울역장 기쁘시겠오라는 인사 한마디 남길 뿐 평화스러이 자기 사무실문 열고 들어가더란다. 남해에서 북강가지 넘실대는 물결 동해에서 서해까지 팔랑대는 꽃밭 땅에서 하늘로 치솟는 무지개빛 분수 이름은 잊었지만 뭐라군가 불리우는 그 중립국에선 하나에서 백까지가 다 대학 나온 농민들 추럭을 두대씩나 가지고 대리석 별장에서 산다지만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새이름 꽃이름 지휘자 이름 극작가이름은 훤하더란다. 애당초 어느쪽 패거리에도 총쏘는 야만엔 가담치 않기로 작정한 그 지성(知性) 그래서 어린이들은 사람 죽이는 시늉을 아니하고도 아름다운 놀이 꽃동산처럼 풍요로운 나라, 억만금을 준대도 싫었다 자기네 포도밭은 사람 상처 내는 미사일기지도 땡크 기지도 들어올 수 없소 끝끝내 사나이나라 배짱 지킨 국민들, 반도의 달밤 무너진 성터가의 입맞춤이며 푸짐한 타작소리 춤 사색뿐 하늘로 가는 길가엔 황토빛 노을 물든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함을 가진 신사가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더란다.

신동엽 시인이 월간문학 창간호(1968. 11)에 쓴 시다. 44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우리도 그런 대통령을 갖고 싶다, 라고 쓸 수밖에 없는 이 웃기는 현실은 무엇인가. 나, ‘자전거 꽁무니에 막걸리 병을 싣고 삼십 리 시골길 시인의 집을 놀러 가’는 대통령을 가진 적 있었으나…….

 

 

   
▲ 박후기 시인.



100번의 울림에 덧붙이는 몇 개의 짧은 이야기

#1
반울림
99편의 시에 대해 말했지만, 나는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했다. 아는 체하며 목소리 톤을 반쯤 올리는 ‘반올림’이 아니라 내 글이 시시하더라도 살림에 지친 당신 가슴의 반쪽이라도 울렸으면 좋겠다고. 시라고 불러도 좋을 내 글이 침묵하는 당신의 저녁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처럼 그렇게 낮은 ‘반울림’이었으면 좋겠다고.

#2
산울림
우리 이제 그만 솔직해지자. 김창완이 만든 산울림 노래가 당신이 쓴 그 어려운 시보다 더 가슴에 와 닿는다는 걸 왜 인정하지 않는 거지? ‘언젠가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청춘)’……. 아주 그냥, 가슴이 운다, 울어.

#3
네가 뭔데 날 울림?
네가 뭔데 나를 울려, 왜 날 울리는 거냐고! 서로 멱살을 잡고 또 잡힌 채 길 위에서 두 남녀가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너 죽고 나 죽자. 두 사람이 헤어지나보다. 그냥 헤어지면 될 것을 왜 죽인다고 난리? 갖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게 사랑은 아닌데. 사랑한다, 사랑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어디 잘 사는지 두고 보자는 저주만 쩌렁쩌렁 울림.

#4
장준하를 울림!
묻힌 지 30년이 다 된, 독립운동가 장준하 선생 유골을 이제야 겨우 꺼내 살펴봤더니 누군가 둔기로 때린 흔적이 둥그렇게, 그대로! 대한 독립군 대위를 일본 만주군 중위 출신이 죽였을 거라는 설이 파다하다. 정의를 고꾸라뜨린 비열한 망치 소리, 그 둔탁한 울림이 귓가에 들리는 듯.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모든 걸 바친 사람은 죽임을 당해 버려지고, 남겨진 자식들은 가난에 울고 있다. 아직도 사쿠라가 판을 치는 세상, 헤이 프랜즈! 벚꽃 엔딩은 언제?

#5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렸나?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소로우가「월든」에 적은 글, 백 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한때, 아침마다 방방곡곡 들려오던, 어느 딕테이터(Dictater)께서 가사를 지었다는 유명한 노래의 첫 소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새벽종이 울렸네~’. 그런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린 거니?

#6
울림통
사람에게는 가슴이 울림통이다. 그 구조로나 쓰임새로나 가슴이 딱 울림통이란 말이지. 당신 가슴 왼편에서 언제나 심장이 울림통을 두드리고 있지. 당신 의지와 상관없이, 생이 뛰는 거야, 저 혼자 뛰어가는 거야 두근두근 거리며. 사랑을 왜 하트로 표현하겠어? 사랑은 심장에서부터 비롯되는 거라고. 떨림, 짠하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울림이 없다면 사랑도 없는 거야. 당신 마음이 사랑으로부터 자꾸 멀어질 때, 그 마음 돌릴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 그럴 땐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 소리를 들어봐. 자기 심장 소리를 들을 수는 없으니, 사랑하는 사람의 왼쪽 가슴에 귀를 대거나, 아니면 등 뒤에라도 귀를 대봐. 거기, 당신 첫 느낌이 두근거리며 떨고 있을 테니까.

#7
울림(鬱林)
울림이란 말을 굳이 한자로 표기하자면, 메아리(回聽) 혹은 반향(反向)이란 뜻이 있다. 뜻은 다르나, 숲을 가리키는 울림(鬱林)도 있다. 생각해보자, 울림은 혼자서는 도저히 생길 수 없는 감정이다. 울울창창(鬱鬱蒼蒼)한 숲속에서 소리를 지르면 되돌아오는 메아리처럼, 무언가와 반응을 통해서 비로소 내가 느끼는 감정이 울림이다. 사랑도 마찬가지. 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룰 수 없고, 막힌 벽 없이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강물도 구부러진 굽이가 있어야 치고 나가는 힘으로 끝까지 흘러갈 수 있는 것. 그러므로 굽이 없는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하고, 막힘없는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

#8
어울림
당신이 누군가와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었다면, 곁에 있는 누군가를 배려하라는 소리로 이해하면 된다. 하나의 예로, 한 사람이 키가 크고 다른 한 사람이 키가 작을 때, 키 작은 사람이 까치발을 드는 것보다는 키 큰 사람이 자세를 조금 낮추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게 보인다. 그러므로 어울림이란, 돈이든 권력이든 조금 더 가진 자가 자기보다 작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세를 조금 낮춰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9
너의 죄
잘 알고 있다. 100편의 글이 100번의 울림으로 다가설 수는 없었다는 것을. 어차피 생은 한 번이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는 것 또한 한 줄의 시다. 그러나 무지(無知)야말로 시보다 힘이 세다. 어느 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시 한 줄이 독자들의 가슴을 적셔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구절에서든 말라비틀어진 인류애의 싹이라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궤도회전」중 한 구절.
‘난 몰랐어’라는 경애의 말에 윤호가 대꾸한다.
‘그게 너의 죄야.’ 

 
   
▲ 딸과 함께한 박후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