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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의 역사타파-16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그 진실을 알고 있는 압록강은 흐른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고려말 최영 장군의 좌우명으로 유명해진 말이다. 최영은 아직도 청렴결백한 고려의 충신이요, 자주적인 군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가 주장한 요동정벌이 이루어졌다면 이 땅의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는 기대로 그의 정치적 몰락을 애석하게 여기는 이들도 많다.

고려 우왕 14년(1388년) 초여름 날씨가 완연한 음력 4월 18일이었다. 서경(평양)에서 요동공략에 나서는 정벌군을 사열하는 최영의 낯빛은 엄숙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필자가 최영의 입장에서 상상을 해본다. 최영은 최근 정국에서 요동공략에 대한 자신의 결정이 대견스러운 듯 생각했다. ‘불온한 세력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잖은가 말이다. 또 이성계의 군사가 항상 맘에 걸렸는데 이번에 확 틀어쥘 수 있어서 그 아니 시원한가. 그렇잖아도 정국 운영 때문에 머리가 아팠는데 마침 명나라가 위압적으로 나온 것은 절묘한 타이밍이었어. 요동을 공략해서 고려의 자주성을 세우겠다는데 누가 이의를 달아? 감히 누가!’ 만약 요동 공격이 실패한다고 해도 피해는 이성계가 더 클 것이야….)

그런데 평양을 떠난 정벌군 쪽의 생각은 달랐다.(이번에는 이성계의 생각을 상상해 본다. 요동을 공격하면 최영의 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갑작스런 대규모 원정군의 편성으로 백성의 원망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싸움에서 조차 여의치 않으면 모든 책임은 나에게 떨어질 것이다. 설령 승리한다고 해도 최영에 비해서 얻을 것이 없는 전쟁이 될 것이다.)

좌우군이 모두 3만 8830명, 심부름꾼이 1만 1634명, 말이 2만 1682필이나 되는 대군을 이끈 우군 도통사 이성계는 끝내 ‘상국을 범할 수 없다’는 명분으로 군사 쿠데타를 단행하였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였다는 급보를 들은 최영은 우왕과 함께 서둘러 개경으로 돌아왔지만 싸움이 되지 않았다.

최영은 명성있는 문반집안 출신이었다. 그러나 최영이 주목받게 된 것은 왕의 숙위를 맡은 우달치라는 특수부대에 들어가면서 부터였다. 최영은 왕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홍건적의 방어에 공로를 세워 공신으로 책봉되는 등 중앙 정계에서 착실하게 기반을 닦아 나가 어느덧 마음만 먹으면 휘하의 군대를 움직여 정국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실세가 되었다.

이즈음 명나라의 과도한 공물 요구와 철령위 설치 문제가 외교적 현안으로 떠올랐고, 이로써 조정은 두 파로 나뉘어져 있었다. 정도전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진관료들은 명과의 화친을 주장하고 있었다. 신진관료들이 자신들이 정치, 경제적 입지를 확보하려 하는 한, 최영으로 대표되는 권문세족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최영에겐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는 신진 관료들의 반발을 눌러야 했고, 그러려면 명에 더욱 강경한 자세를 취해야 했다. 때문에 농사철이라는 것도, 장마가 온다는 것도, 왜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그의 최대 관심사는 정국 장악이었다. 최영은 그렇게 밀고 나갔다. 결국 요동 정벌은 결정되었고, 이에 대한 반대 세력의 대응은 위화도 회군에 의한 쿠데타였다.

어쩌면 처음부터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은 자주적이거나 사대적이라는 명분과는 거리가 먼 권력다툼의 과정에서 나타난 산물일 지도 모른다. 신구 세력이 서로 맞서고 있는 숨막히는 상황에서 정치적 운명을 건 건곤일척의 한판 대결치곤 역사에 끼친 결과가 너무 커져 버렸나 보다.

그런데도 최영을 아쉬워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칠십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 온 그의 삶 때문인가. 아니면 사대교린의 나라 조선이 지닌 한계를 절감한 이 땅의 백성들에게 그래도 원 없이 만주벌판을 달리고 싶은 욕망이 살아있기 때문인가?

오룡(오룡 아카데미 원장, 용인 여성 회관, 강남대 평생교육원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