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9 (일)

  • 맑음동두천 22.1℃
  • 맑음강릉 17.8℃
  • 맑음서울 23.5℃
  • 맑음대전 24.7℃
  • 맑음대구 29.3℃
  • 맑음울산 21.8℃
  • 맑음광주 24.1℃
  • 맑음부산 20.3℃
  • 맑음고창 ℃
  • 맑음제주 21.4℃
  • 구름조금강화 19.4℃
  • 맑음보은 24.9℃
  • 맑음금산 23.4℃
  • 맑음강진군 24.4℃
  • 맑음경주시 22.6℃
  • 맑음거제 23.8℃
기상청 제공

조선시대, 그리고 대한민국

어느 시대 백성이 대접받고 사는가?

오룡의 역사 타파(18)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의 원칙은 ‘덕치’의 유교이념에 있다. 조선 건국의 정당성과 명분도 그러했으며,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근본도 민본에 있다고 설명한다.

훈민정음과 농사직설, 각종 과학기구의 발명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의 신문고가 주목되는 이유도 백성을 배려하는 사례에서 가장 혁신적이기 때문이다. 태종 4년(1404년), “국가에서 백성의 의사가 왕에게 전달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신문고를 설치하였다. 백성들에게 와서 치도록 허락하여 왕의 귀와 눈이 막히고 가려지는 근심을 없애니, 이것은 진실로 좋은 법이요, 아름다운 뜻이다.”라고 실록은 기록했다.

현재의 중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설치한 신문고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여 국가 정책에 반영한 것으로 표현하여 민주적인 제도였다’ 라고 서술하는 부분도 우려되는 주장이다.

조선의 신문고는 전국의 백성들이 언제 어디서나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의 궁궐에 위치한 신문고. 그 신문고를 치기 위해 서울에 오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절차의 복잡성 이었다. 신문고를 치기 전에 해당 관청에 호소하고, 억울함이 해결되지 않다고 생각되면 사헌부를 통해 신문고를 칠 수 있었다.

또한 경국대전에 따른 제한규정에 의거 국가안위와 불법살인 이외는 상관을 고발하거나, 백성들이 수령을 고발하면 벌을 받도록 되어 있었으니 신문고는 칠 수 없는 북인 셈이다.

결국 신문고는 민본사상이 아닌 덕치의 이념에 충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선왕조의 성리학적 질서 속에서 백성은 도덕의 실천 능력이 없거나 어리석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지배층인 사대부들이 나서서 백성을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 즉 상하와 귀천의 구분이 명확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농민에 대한 예우가 아닌 단지 직분에 따라 열심히 일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하는, 세금을 거두는 중요한 대상에 대한 포장의 용어가 농자천하지대본이다. 농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눈과 귀를 현혹하여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강력한 사상 통제의 도구는 아니였을까?

백성을 통치의 대상이 아닌 사회의 계층 일원으로 인식한 다산 정약용은 “천하에 가장 천해서 의지할 데 없는 것도 소민이요, 천하에 가장 높아서 산과 같은 것도 소민”이라고 <목민심서>에 기록했다.

그가 곡산 부사로 부임하여 농민항쟁을 이끌었던 이계심에게 “고을의 수령이 밝지 못하게 되는 이유는 백성의 폐단을 보고도 항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 같은 사람은 관가에서 마땅히 1000냥의 돈을 주더라도 사야할 사람이다”라고 격려했다. 말 뿐만이 아닌 현실에서 실천하는 관리의 모습을 보여준 다산의 모습을 18대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이유이다.

18대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된 대한민국의 오늘이 과연 600년 전의 조선 태종 때 보다, 200년 전의 정조 때 보다 좋아졌다고 자신있게 주장할 수 있는 것,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은 것 말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을 조선왕조의 농자천하지대본처럼 인식하는 위정자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오룡(오룡 아카데미 원장, 용인 여성 회관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