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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패전지장 백제의 계백. 황산벌 전투의 총지휘관이었을까?

오룡의 역사타파

오룡의 역사 타파(20)

망국의 패전지장 백제의 계백. 황산벌 전투의 총지휘관이었을까?

우리 역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투, 기억에 남는 장군은 누구일까?

설문조사를 한다면 23전 23승 불패의 신화를 만든 이순신. 30만 수나라의 별동대를 살수에서 몰살시킨 을지문덕, 화북지방을 휩쓸었던 요나라의 10만 정예병을 전멸시킨 강감찬 보다 우선할 수 있는 인물. 전쟁에도 승리하고 나라를 구한 승장이 아닌, 패전과 더불어 목숨을 잃고 나라마저 비참하게 멸망당한 패장. 그가 바로 계백이다.

660년 음력 7월9일. 뙤약볕 조차 피할 곳 없는 황산벌(지금의 논산시 연산면). 백제의 명운을 걸고 황산벌에 집결한 5000결사대를 지휘한 달솔 계백은 백제의 2관등으로 황산벌 전투에는 계백 이외에도 백제의 1관등인 좌평 충상과 상영이 참가한 것으로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계백의 열전 기록을 더 살펴 보자.
一國之人, 當 唐羅之大兵, 國之存亡, 未可知也. 恐吾妻孥, 沒爲奴婢, 與其生辱, 不如死快.” 遂盡殺之. 至黃山之野, 設三營, 遇新羅兵將戰, 誓衆曰: “昔句踐以五千人, 破兵七十萬衆, 今之日, 宜各奮勵決勝, 以報國恩.” 遂鏖戰, 無不以一當千, 羅兵乃却. 如是進退, 至四合, 力屈以死.

“한 나라 사람이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당해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내 처와 자식들이 포로로 잡혀 노비가 될지 모르는데, 살아서 욕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쾌히 죽는 것이 낫다.”며 가족을 모두 죽였다. 황산의 벌에 이르러 세 진영을 설치하고 신라의 군사를 맞아 싸울 때 뭇 사람에게 맹서하였다.“옛날 구천(句踐)은 5000명으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격파하였다. 오늘은 마땅히 각자 용기를 다하여 싸워 이겨 국은에 보답하자.”드디어 힘을 다하여 싸우니 한 사람이 천 사람을 당해냈다. 신라 군사가 이에 물러났다. 이처럼 진퇴를 네 번이나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힘이 다하여 죽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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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벌 전투 상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삼국사기 관창의 열전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爲賊所虜, 生致百濟 元帥階伯前 “적에게 사로잡혀 산 채로 백제 원수계백의 앞으로 보내졌다”라고 나온다.원수(元帥)라는 호칭은 백제군을 총 지휘하는 장군을 뜻한다. 그렇다면 계백보다 관등이 높은 좌평 충상과 상영은 어떠한 존재인가. 자기보다도 관등이 낮은 계백의 지휘 통솔을 받을 수가 있는가.

그런데도 삼국사기에서 김부식은 관창을 사로잡아 계백에게 보냈지, 좌평인 충상과 상영에게 보낸 것이 아니며 석방할때도 계백의 명령에 의해 석방시킨 것으로 기록했다. 그렇다면 좌평 충상과 상영의 존재에 대해 더 생각해 본다면. 삼국사기에서 백제군은 황산벌 주변에 3영으로 나누었다고 나온다. 추론해 보자면, 백천간두의 위기인 상황에서 의자왕은 충성스런 5000결사대의 지휘권을 계백에게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충상과 상영은 자신의 가병이나 지역내 귀족들의 군사를 모집하여 계백을 지원하는 형태로 각각 1영씩을 맡아 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계백을 제외한 나머지 2영이 실제 전투시 제대로된 전투를 못하고 신라의 김유신에게 쉽게 항복해 버리는 부분을 보면 충성스런 군인이 아닌, 훈련을 제대로 못 받은 급조된 군대는 아니었을까.오직 계백의 5000결사대 만이 치열한 전투로 신라군의 공격을 4번이나 패퇴 시킨 것이다.

따라서 열전 관창편에서 원수계백(元帥階伯)이 바로 황산벌 전투를 지휘한 백제의 마지막 장군이었다. 나라의 멸망과 더불어 극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계백에 대해서, 백제를 미워한(?) 김부식 조차도 인정한 결과가 계백의 마지막 존재가치를 오늘날까지 이어 준 사료가 되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오룡
(평생학습 교육연구소 대표, 오룡 아카데미 원장, 용인 여성회관 강사)